[천자 칼럼] '바다 위 테슬라' 경쟁
소득 1만달러 시대엔 테니스, 2만달러엔 골프, 3만달러엔 요트….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선호하는 레저가 달라진다는 속설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3년 뒤 4만달러 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한국에서 아직 요트는 생소한 편이지만, 바닷가로 눈을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마리나는 이미 34개소, 정박할 수 있는 자리는 모두 2355석에 이른다. 레저용 선박(요트·모터보트 등. 이하 2018년 기준)은 2만2131척, 조종면허를 가진 사람도 22만7900명이나 된다. 물론 선진국에 비하면 미미하다. 레저선박 한 척당 인구 수에서 캐나다(4명), 노르웨이(7명), 스웨덴(13명), 미국(25명) 등은 한국(2342명)과 비교불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공통된 애로가 있다. 이들 선박 보유자의 1년 평균 운항시간이 40여 시간에 불과해 마리나 접안에 꽤나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초보운전자가 주차를 힘겨워하는 것과 같다. 전체 해양사고의 90%도 사람의 운항 과실로 일어난다.

그래서 주목받는 게 자율주행 자동차와 유사한 ‘선박 자율운항 기술’이다. ‘선박 스스로 의사결정하는 기술’(4단계·완전자율운항 수준)이 최종 목표다. 2025년이면 대형 상선까지 총 180조원 시장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관련 핵심 기술은 유럽이 선점했지만, 3000건에 이르는 특허 중 96%를 중국이 가진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주 열린 ‘CES 2022’에서도 자율운항선박이 큰 관심을 모았다. 현대중공업의 자율운항선박 자회사 아비커스도 관련 기술을 선보여 AFP 등 외신의 찬사를 받았다. 아비커스는 국내 최초로 12인승 크루즈의 완전 자율운항 시험에 성공한 회사다. 인공지능(AI)으로 선박 상태와 항로를 분석하고, 이를 증강현실(AR)로 전달하며, 이안·접안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미국 대서양 연안을 차로 달리다 보면 보트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뉴잉글랜드 지방엔 그림 같은 풍경의 항구도시가 줄지어 있다. 요트는 아니더라도 보트를 SUV에 연결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우리나라도 천혜의 환경(해안선 1만5000㎞, 섬 3300여 개)에서 뒤질 게 없다. 조선·해운강국의 자존심도 있다. 서핑 붐이 일면서 해양레포츠 체험 인구도 100만 명을 넘었다. 이런 관심이 ‘바다 위 테슬라’ 경쟁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