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카카오페이의 '무늬만 사과'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45)는 승승장구 인생이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거쳐 2011년 카카오에 입사한 지 11년 만에 공동 대표로 낙점받았다. 오는 3월 취임 예정이다. 그는 기술력과 사업 수완이 발군이다. 개발자 출신으로 카카오 기반 무료통화 서비스 ‘보이스톡’과 국내 최초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 출시를 주도했다. 2017년엔 카카오페이 대표로 취임해 4년 만에 상장도 성공시켰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으로 금융당국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핀테크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런 류 대표가 최근 위기다. 그제는 직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말 카카오페이 경영인들의 스톡옵션 대량 매도 사태와 관련해서다. 경위는 이렇다. 류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 8명은 지난해 12월 8일 44만 주의 스톡옵션(약 900억원어치)을 처분했다. 상장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류 대표는 보유 스톡옵션의 32%인 23만 주를 팔았다. 세후 차익만 274억원으로 추정된다.

경영진의 스톡옵션 매도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최대주주나 기관과 달리 매도가 제한되는 보호예수기간이 없다. 그러나 상장 한 달 만에 일제히 주식을 내다판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대주주 양도세’ 회피 목적으로 팔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설명이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경영진 8명이 한꺼번에, 그것도 코스피200 지수 편입 직전일 시간외거래에서 ‘작전하듯’ 주식을 처분한 것은 모럴 해저드의 극치라는 비판이다.

그후 카카오페이 주가는 한 달 새 25%나 급락했고, 주주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모두 “뒤통수를 맞았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류 대표는 한 달 만에 나서 “경영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내외적으로 많은 노이즈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뒤늦게 사과와 반성, 주주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계획도 없이 나온 ‘분노 유발’ 사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초부터 증시에 우울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 1880억원 규모의 대규모 횡령사건이 발생해 일파만파다. 오스템임플란트와 카카오페이 모두 해당 업계에선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기업이다. 혁신은 진지한 성찰과 뼈를 깎는 변화 몸부림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동안 말만 혁신이었지 구태와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 일이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