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도 국경을 맞댄 지리적 조건 때문에 소련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1948년에는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련이 소멸한 1991년까지도 내정간섭에 시달렸다. 이처럼 강대국의 강압으로 국가주권을 심각하게 침해받는 외교정책을 경멸하듯 일컫는 말이 곧 ‘핀란드화(化)’다.
이 시기에 핀란드는 소련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책과 영화 유통을 금지했다. 자국 출판사가 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를 내려 하자 이를 저지했다. 언론 보도까지 자체 검열을 했다. 소련이 지지하는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야당 후보를 사퇴시키기도 했다.
소련이 붕괴된 뒤에도 러시아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양측의 국경선은 1340㎞에 이른다. 그런 핀란드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14년부터다. 계기는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며 군사 압박을 강화하자 미국과의 협력으로 눈을 돌렸다. 자국 내 나토군의 군사훈련도 허용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동시에 나서서 “언제든 나토 회원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러시아가 “나토에 동참할 생각을 하지도 말라”고 경고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요구가 핀란드 내부의 나토 가입 논의에 불을 지폈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핀란드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드러내놓고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마당에 미국과의 동맹이 흔들리면 우리 안보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광복 후 소련이 한반도에 핀란드화 전략을 적용하려 했던 것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핀란드의 경우 동맹국이 하나도 없었고 전쟁에 패배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우리에겐 함께 피를 흘린 동맹이 있는데도 이런 걱정이 나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