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집무실이 없는 사장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코로나19 이전, 미팅 때문에 사무실을 방문한 손님 중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놀란 사실이 있다. 인텔코리아에는 사장 집무실이 없고 모든 직원이 똑같은 크기의 공간에 배치된 책상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조차도 개인 집무실이 없다.

집무실만이 아니다. 인텔에는 또 하나 더 없는 게 있다. 직급을 부르지 않는다. 인텔코리아 또한 모두 이름으로 소통하며, 회사 내부에서는 직급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 입사한 신입 직원도 나를 부를 땐 영문 이니셜인 MS로 부르도록 권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직급 대신 이름에 ‘님’ 또는 ‘프로’를 붙여 부르거나 영어 닉네임을 부르는 경우가 국내 기업에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직급으로 인해 형성된 수직적 문화에서 벗어나 수평적 문화를 확산시키는 추세다. 한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에서 진행한 조사에서도 직급의 단계를 간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조사 대상의 절반을 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더 흥미로웠는데 수평적인 조직문화 확대라는 이유가 가장 높았고, 동등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부서 간 원활한 협업이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직급별로는 임원급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사원급이었다고 한다. 직급 간소화는 단순히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축이 되는 임원들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수평적인 문화가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 왔다고 가정해보자. 과거 경험에 기반한 세대의 통찰력뿐 아니라 새로운 변화에 민감한 세대의 시각도 해결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일한 업무 공간이나 호칭의 변경만으로 기업의 수평문화가 단기간에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내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리더십의 의지와 실천이 필요한 일이며, 긴 호흡으로 진행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구나 동등한 공간에서 근무하고 직급 대신 이름으로 소통하는 등, 이 회사에서는 누구나 동등하다는 생각이 절로 몸에 밸 때 비로소 사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회의 시간에 발언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분위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라면 개인 문제이지만 후자라면 회사 문제이기에 심각한 상황이다. 수평적인 문화가 정착돼야 ‘내 의견이 묵살당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없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 이럴 때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이 사내에 흘러넘칠 수 있다. 작은 부분부터 실천하며 수평적인 사내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