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내 주요 도로와 이면도로의 최고 속도를 각각 시속 50㎞, 30㎞로 제한하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시행된 지 7개월이 넘었다. 빠른 속도에 길들여진 운전 습관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고, 속도 위반 과태료가 야속할 때도 있다. 하지만 교통공단에 따르면 시행 이후 보행 사망자가 17%나 줄었다고 하니 꽤 고무적이다. 안전속도, 더 큰 가치를 지키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속도전에 익숙한 기마민족의 DNA가 남아서일까? 한국인은 속도에 꽤 민감하다. 버스가 멈추기 전에 하차를 준비하는 것은 예사고, 조금 느려진 인터넷 속도에는 신경이 잔뜩 예민해진다. 우리에게 느림은 참기 힘든 어색함인 듯하다. 물론 이런 속도 민감성이 유례없는 압축 성장의 원동력이었겠지만, 안전문화에 있어서는 다르다. 신뢰와 보호를 외치는 안전성보다는 빠른 결과물을 약속하는 속도, 그 효율성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다소 가볍게 여긴다. 속도와 안전, 참 다루기 어려운 양날의 칼 같다.

실시간으로 돈을 보내는 우리의 지급결제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실시간 이체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사고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인출을 지연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다소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속도라는 효율성을 향해 달려온 선진화된 우리 금융이 소비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도 살피고 있는 것은 참 다행스럽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된 비대면 거래는 우리 삶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음식배달, 새벽배송뿐 아니라 간편결제, 송금 같은 빠른 금융서비스에 어느덧 익숙해져간다.

그러나 익숙함에 무뎌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증이다. 빠르고 편리한 비대면 거래는 사용자와 거래의 진실성을 담보해주는 인증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런 인증 서비스에도 최근 속도전이 거세다. 물론 정책당국은 안전성 등을 고려해 인증 서비스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체계를 두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등록, 사용, 갱신이 쉽고 빠른 간편인증이 제일인 것 같다. 어린 학생들이 오가는 스쿨존을 쌩쌩 달리던 예전 위험했던 도로환경을 보는 듯해 왠지 불안하다.

다양한 서비스가 경쟁하는 인증시장에서 간편함이 전부일까? 밀가루를 칠한 호랑이 손을 엄마 손으로 착각해 문을 연 전래동화 속 남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려도 손을 만져보는 절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거래 형태나 환경에 꼭 맞는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인증에도 안전속도 5030이 필요한 것이다.

속도를 늦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안전속도를 지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내일을 생각할 때 지나치지 않다. 속도와 안전, 그 균형에 대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