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공약으로 괜찮은 느낌이 드는 아젠다를 내라”고 지시한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위반 행위가 없었다는 산업부 해명에도 선관위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혹·논란을 넘어 법 위반 징후가 뚜렷하다는 얘기이고, 수사 의뢰 자체도 전례 없는 일이란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선관위가 여성가족부의 선거법 위반 여부도 조사키로 한 것은 관련된 내부 이메일 내용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공약 관련으로 검토한 내용이 일절 나가지 않도록 하며, 중장기 정책과제란 용어로 통일하라’는 내용이 정보기관도 아닌, 정부 부처에서 나올 소리인가 싶다. 박진규 차관은 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란 점에서 여당 공약 개발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정부 부처가 ‘공약 도우미’ ‘공약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공약 조공(朝貢)’이란 신조어까지 나오는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국가 기본질서인 헌법(제7조)부터 공직선거법(제9조)에 이르기까지 두루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부정선거운동죄(선거법 제255조)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이런 무거운 의무를 지우는 대신, 공무원의 신분·연금 수급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줄 서기’하듯 한 이들의 행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야당의 ‘여가부 폐지’ 주장, 점점 떨어지는 부처 위상 때문에 어떻게든 여당에 기대보려는 구태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말문이 막힐 노릇이다.

여당 대선후보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주장으로 촉발된 ‘금권선거’ 논란에다 ‘관권선거’ 시비까지 일게 돼 국민은 아연하기만 하다. 그제 김부겸 총리는 공직자 정치 중립을 강조했지만,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며 사태의 엄중함을 깎아내리는 듯한 반응에 그쳤다. ‘민주주의 후퇴도 이런 후퇴가 없다’는 한탄이 나올 만하다.

산업부는 특히 전국의 화물차 운행이 멈추고 산업생산 차질을 빚는 요소수 사태의 주무부처다. 본업은 철저히 돌보지 않으면서 여당 눈치보기에만 치중하는 부처는 존속할 가치가 과연 있을까 싶다. 엄정 수사를 넘어 정부 부처의 뿌리 깊은 정치권 줄대기 문제를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부처의 존폐마저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을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