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열린 대한민국'과 그 적들
닷새 추석 연휴가 훌쩍 지났다. 하루도 편할 날 없는 한국 사회에서 닷새는 긴 망각의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갈등민국’으로 복귀하는 데 얼마 안 걸릴 것 같다. 대선판의 온갖 의혹과 갈등이 점입가경이고, 거대여당이 일명 ‘언론재갈법(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무조건 처리를 예고한 날짜(27일)가 코앞에 다가와서다.

연휴 직전 여당 대표는 “고의·중과실 추정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했지만, 그런다고 언론 통제라는 본질이 감춰지진 않는다. 허위·조작보도의 모호한 잣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열람차단제 등 허다한 독소조항은 그대로다. 권력자들이 불편해 할 ‘진짜뉴스’가 위축될 위험이 크다. 오죽하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우려 서한을 보내고, 국제인권·언론단체들이 앞다퉈 인권변호사 출신 한국 대통령에게 재고를 촉구한 이유다.

언론 자유와 관련해 흔히 인용되는 게 존 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이다.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1644)에서 ‘사상의 자유로운 공개시장’을 통해 언론의 자유란 개념을 최초로 정립했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으로 옹호했다. 그렇게 근대가 열렸다.

사실 권력자 치고 언론 비판을 달가워 한 경우는 없다. 눈엣가시요, 신발 속 모래 같을 것이다. 제퍼슨조차 대통령이 돼선 “신문에 난 대통령 기사는 다 거짓말”이라고 발끈했다. 닉슨은 언론 보도로 하야했고 링컨, 케네디, 클린턴도 재임 내내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언론 없는 정부’는 하나같이 최악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가 ‘정부 비판은 국가에 대한 음모’라며 방송사들을 대거 폐쇄한 것이나 홍콩 빈과일보 폐간 사례가 잘 보여준다. 3대 세습 북한 왕조는 언론자유도가 세계 180개국 중 에리트레아와 꼴찌를 다툰다. 우리도 1980년대 5공 시절 ‘땡전 뉴스’를 경험했다.

언론 자유에 관한 한 역사는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230년 전(1791년) 수정헌법 1조에 표현·출판(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제정을 금지한다고 못박았다.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조 공산국가 소련에는 세계 최대인 1100만 부의 ‘프라우다’가 있었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러시아어로 ‘진실’이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는 진실’이란 역설적 별칭으로 기억된다. 이렇듯 독재·전체주의 권력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의 《1984》 속 ‘진리부(部)’처럼 선전부나 선전선동부만 있으면 그만이다.

어떤 명분이든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소련의 길’로 달려가는 권력 오남용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언론도 과도한 ‘클릭 장사’, 오보·과장보도 등 고쳐야 할 점이 많다. 그렇더라도 언론이 자정(自淨)하고 공론장에서 검증할 일이지 권력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열린 미국을 지향할 것인가, 닫힌 소련을 닮아갈 것인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란 대통령 언급은 전자지만, 언론재갈법 강행은 후자가 될 것이다. 칼 포퍼는 모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사회는 ‘열린 사회’뿐이라고 봤다. 열린 사회는 비판을 수용하고, 진리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이며, 비판받지 않는 절대권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 전제인 자유와 기본권은 정치적 타협대상이 될 수 없다.

집단에 의해, 권력에 의해, 의회 다수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제약받는 나라가 열린 사회일 수 없다. 과학적 근거 없이 기본권을 통제하는 K방역, 서민 주거권 훼손과 증세폭탄의 부동산 정책,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세력, 표현·집회 자유의 선택적 통제…. 여기다 같은 편이면 억지와 위선조차 용인하는 집단편향성까지 더하고 있지 않은가.

뭐든 자꾸 겪다 보면 익숙해진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못하고, 자유와 기본권 침해에 점점 익숙해질 때 그 종착역은 전체주의가 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대중에게 개인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준다.(…) 전체주의가 권력을 잡으면 나라의 사회적·법적·정치적 전통을 모두 파괴한다. 계급을 대중으로 전환시키고, 정당체제를 대중운동으로 대체한다.”(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히틀러와 스탈린이 없다고 전체주의가 사라진 건 아니란 경고도 아렌트는 남겼다. 전체주의자들은 ‘정체성을 가진 시민’을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