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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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이 국민의 88%까지 확대되면서 2~4차에 걸쳐 정착되는 듯했던 재난지원금 선별 지원 원칙이 일거에 무너져 버렸다. 경제적 어려움이 큰 계층에 지원을 집중한다는 당초 명분은 완전히 퇴색했고, 재정 집행의 효율성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퍼 주기' 포퓰리즘만 만연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요 국가재정 지출 결정에서 아주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감춰져 있다. 소득불평등 완화 등 사회통합적 가치를 위해 응당 인내하려던 '깨어 있는 국민'을 자신의 삶만 지키는 '옹졸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이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나머지 12%의 불만이다. 세금 낼 것 성실하게 다 내왔는데, 지급 금액을 떠나 왜 자신들은 소외시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한다. 국내 소득 상위 10%는 이미 전체 소득세의 77%를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정부 들어 '가진 자'라며 온갖 비난은 다 하고, 걸핏하면 세부담을 늘리려는 시도만 있어 억울하던 차에 한 대 더 때렸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부자증세를 공약으로 내세우기 바쁘지만,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측의 불만이 이처럼 쌓여가면 조세저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국민 50% 지급' 정부안을 중심에 놓고 협의했다면 커지지 않았을 조세저항의 불씨가 앞으로 어떻게 번져나갈지 우려된다.

지급 범위가 국민 70%, 80%로 점점 넓어지면서 그 경계선에 있는 국민들이 '나도 해당될까'라며 수령 유혹에 빠져든다는 점도 문제다. 자산은 기준에 포함되는지, 작년 소득 기준인지 올해 기준인지, 자신의 건강보험료 월납입액이 얼마인지 다들 확인해보는 분위기다. 처음엔 코로나 영업제한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에게 선별 집중 지원되기를 바랬지만, 판이 이렇게 바뀌자 어쩔 도리 없이 '소시민'이 돼 버린 것이다.

작년 전국민 재난지원금 수령 때 기억, 신용카드 지출 때 차감되는 포인트가 문자로 날아온 기억도 되살아난다. 대통령까지 "소고기 사 먹었단 소식에 뭉클했다"고 할 정도로 받는 쪽이나 퍼 주는 쪽이나 처음 경험해보는 묘한 기분이었다. 대출 약정 등으로 매달 일정액 써야 할 카드는 많은데, 재난지원금까지 남김없이 써야 해서 '행복한 고민'도 했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점점 노예근성에 젖어 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몇 푼이라도 쥐여주면 '공돈'이라며 좋아하는 사람이 나였구나 싶다. 하지만 그 대상에서 제외되긴 싫고, 나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면 '노예의 길'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재정중독이 정부의 '재정지출 중독'에서 나온 말이지만, 수급자도 중독되기는 마찬가지다. 마약과도 같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재난지원금 정치'가 꼴 보기 싫어 재난지원금 기부는 생각지도 않는다는 항변까지 작년에 나왔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아니더라도 납세 등 국민으로서 본연의 도리를 다한 만큼 꼭 받아 쓰겠다는 얘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어떻게 얘기하겠는가. 철학과 가치를 둘러싼 전쟁 앞에선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국민들에게 월 8만원 용돈을 주겠다는 기본소득 구상의 위험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시적 재난지원금을 해마다 받는 경험을 하면서 정부에 계속 손 벌리고 싶은 충동이 자기도 모르게 생겨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버이 정부' 앞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과연 있을까. 기본소득 또한 이같은 국민의 환심은 얻으면서 나라경제는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될 수 있다.

재난지원금 포퓰리즘은 그래서 심각한 문제다. 나라와 국민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어 갈 것이다. 이제라도 이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지 않을까.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