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에게 소금수레를 끌게 해서야… [고두현의 문화살롱]
명마(名馬)는 눈 밝은 사람에게만 보인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 감별사 백락(伯樂)은 남다른 안목을 가졌다. 어느 날 말 장수가 아무도 자기 말을 사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가만 보니 의외로 준마였다. 그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말은 열 배 넘는 값에 팔렸다. 여기에서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나왔다.

한번은 그가 왕의 명으로 명마를 구하러 가다가 험한 산길에서 소금수레 끄는 말을 발견했다. 비쩍 마르고 볼품없었지만 그는 금방 알아챘다. 이런 천리마가 무거운 소금수레를 끌고 있다니! 그가 말을 붙잡고 울며 옷을 벗어 덮어주자 말이 앞발을 높이 들고 구슬피 울었다.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끈다는 뜻의 ‘기복염거(驥服鹽車)’는 우수한 인재가 재능에 맞지 않게 변변찮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일컫는다. 뛰어난 인재가 때와 사람을 못 만나 재주를 펴지 못한다는 ‘회재불우(懷才不遇)’도 같은 말이다. 재주를 품고 있어도(懷才) 기회를 만나지 못한다면(不遇) 불우한 사람이다. 좋은 가정과 부모를 만나지 못한 불우 청소년, 경제 상황이 나쁜 불우 이웃도 그렇다.

회재불우는 중국 서한 때 가의(賈誼)가 쓴 《신서(新書)》에서 유래했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가의는 “법령을 간략하게 해 형벌을 줄이고 부를 축적하며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등의 개혁안을 잇달아 건의했다.
천리마에게 소금수레를 끌게 해서야… [고두현의 문화살롱]
또 “지금처럼 한 사람이 밭을 갈고 열 사람이 빌붙어 먹으면 굶주림을 면할 수 없으니 모두가 일을 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경제정책까지 내놨다. 그러나 대신들의 시기로 요직에 쓰이지 못하고 좌천됐다가 33세에 죽고 말았다.

이런 그를 아까워한 사람이 많았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가생(賈生)’이란 시에서 ‘인재 구해 쫓겨난 신하까지 부르니/가생의 재주 견줄 사람 없지만/안타까워라 한밤중 무릎 당겨서/민생은 묻지 않고 귀신만 묻는구나’라고 읊었다. 귀한 인재를 구한다면서 밤늦도록 무릎 맞대고 묻는 게 국가 현안이 아니라 허황한 귀신 얘기뿐이라며 ‘눈먼 통치자’를 풍자한 것이다.

시인 이백과 두보도 정치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한 세기 후의 신라 인물 최치원 또한 그랬다.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국제적으로 문명을 날린 그였지만, 귀국 후 6두품이라는 신분의 굴레에 갇혀 뜻을 펴지 못하고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세상에 날 알아주는 이 없네’라며 한탄했다.

좋은 인재는 적재적소에 쓰일 때 빛난다. 백락이 수레 끌던 말을 사 오자 왕은 “웬 비루먹은 말이냐”며 화를 냈다. 백락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일 좋은 먹이를 주며 힘써 보살폈다. 그러자 비쩍 말랐던 말이 위풍당당한 천리마로 변신했다. 왕이 놀라워하며 말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자 천리길을 단숨에 내달렸다.

예나 지금이나 명마는 많지만 알아보는 이는 많지 않다.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가 “천리마는 늘 있으나 백락은 드물다”고 했듯이, 요즘도 뛰어난 인재는 많으나 이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지도자가 드문 게 문제다. ‘만날 우(遇)’ 자에는 ‘상대를 대접하다’는 뜻도 있다. 훌륭한 인물을 예로써 대하는 것이 곧 예우(禮遇)다.

유권자들도 선거 때마다 난립하는 후보 중에 누가 나라의 큰일을 해낼 수 있는지 구별하는 백락의 안목을 갖춰야 한다. 잘못하면 명마의 외투를 입은 나귀나 노새를 뽑을 수 있다.

다만 ‘명마’의 반열에 이미 오른 인재라도 언제든 소금수레 끄는 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날렵한 천리마가 놀고먹으면서 단련을 게을리하면 살만 뒤룩뒤룩 찌고 쓸모가 없어진다. 보검에 녹이 슬면 날 선 우도(소 잡는 칼)보다 못하고, 명마에 살이 붙으면 나귀나 노새에도 뒤진다고 했다.

인재를 고르는 법…곁가지보다 핵심을 보라

백락이 늙자 왕은 후계자를 뽑고자 했다. 백락에게 추천을 권했다. 그는 구방고(九方皐)를 천거했다. 왕은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그에게 천리마를 구해오라고 했다. 구방고가 전국을 훑어 천리마를 구해왔다. 왕이 “암말이냐? 수말이냐? 색깔은?” 등을 물으니 “암놈이면 갈색일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수놈에 검은색이었다. 왕이 인재를 잘못 추천했다고 탓했다. 그러자 백락이 “그는 말을 볼 때 정(精)만 보지 추()는 보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과연 그랬다.

이는 사람을 고를 때 그의 핵심을 보고 곁가지는 중시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인재를 뽑을 때 학연·혈연·지연 같은 곁가지보다 그 사람의 능력을 봐야 한다는 의미다.

삼성의 성장 비결도 ‘인재 제일주의’다. 이병철 창업자는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찾는 데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인재의 덕목 중 ‘신뢰’와 ‘노력’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꼽았다. 《위대한 기업》의 저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마쓰시타전기 창립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마쓰시타전기는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상품도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인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