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구 편'인지가 檢 인사기준인 세상
말이 안 나왔던 검찰 인사가 어디 있었나. ‘대한민국 검사’가 아니라 ‘친정부 검사’들이 요직을 꿰차는 일이야 드문 것도 아니었다. 법무부가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상 청와대와 여당의 눈치를 아예 안 볼 순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마지노선’이란 게 있었다. 검찰의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에서 근무했던 한 검사는 “친정부 검사가 위에 잘 보여 좋은 보직을 맡으면 그 다음해에는 이보다 급이 떨어지는 보직으로 옮겨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그렇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검사’에 대한 예의이자, 편 가르기를 일삼는 권력으로부터 검찰 조직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최근 2~3년간은 그 마지노선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일선 검사들은 입을 모은다.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보직 경로는 검찰 내에서 “검찰 70년 역사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정권에 민감한 수사를 뭉갠다’는 의혹에 후배들로부터 용퇴 건의를 받았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하에서만 반부패부장→검찰국장→서울중앙지검장→서울고검장으로 연달아 승진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는 최근 인사에서 부부장검사로 승진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징계를 내리는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검사장 승진 1순위 자리로 꼽히는 성남지청장으로 영전했다. 윤 전 총장 징계 사태가 “국민께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로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반면 정권을 겨냥했던 검사들은 예외없이 좌천됐다. 청와대의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하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발령났다. 추 전 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을 수사했던 양인철 부장검사는 수사권이 없는 대구고검 검사로 발령난 뒤 지난 28일 사표를 냈다.

이번 인사를 둘러싸고 검찰 안팎에서 나오는 비판은 ‘잡음’ 정도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다. 과거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별일 없겠지’ 여긴다면 대단한 오산이자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는 선서를 가슴에 품고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이 아직 많기에 그렇다. 그들의 속내가 행동으로 표현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