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술대에 오른 軍 사법체계
상부에 성추행을 보고했다가 회유와 협박, 2차 가해로 괴로워하던 공군 이모 중사가 사망한 지 한 달여다. 그새 민간인들로 구성된 군 수사심의위원회는 네 차례 회의를 열었다. 수사심의위원들은 사건의 축소·은폐 여부부터 부실수사 정황이 드러난 군 수사관계자에 대한 기소 여부 등을 논의했다. 일반적인 검찰·경찰 수사심의위원들이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와 피의자 인권 침해 여부를 감시하는 데 비해 군 수사심의위원들은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들여다봤다.

안타까운 죽음은 10여 년간 이어진 군 사법 체계 개혁 문제를 다시 불러왔다. 군은 민간의 형사법 체계와 별도로 군형법과 군사법원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민간에선 경찰과 검찰이 수사·기소하면 법원이 재판한다. 이에 비해 군은 수사와 재판에서 자족기능을 갖추고 있다.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이 있는 각 부대에는 군사경찰(옛 헌병), 검찰부, 보통군사법원 등이 모두 있다.

문제는 지휘관이 이 모든 단계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사건의 축소·은폐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현행 군사법에선 모든 군인 신분의 가해자는 1·2심 재판을 군사법원에서만 받아야 한다. 주로 군단장 등이 맡는 ‘관할관’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일반 장교를 여러 이유로 ‘심판관’(판사)에 앉힐 수도 있다. 군 사법 관계자들에겐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피의자)도 살을 맞댄 ‘전우’란 인식이 강하다.

군 사법 체계의 독립성 문제는 미국에서도 이슈다. 최근 미국 국방장관은 군내 성폭력 사건에서 지휘관의 기소권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성범죄가 급증하는데 지휘관이 이를 축소·묵살하려 한다는 비판 때문인데, 의회에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 국회에도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2심(항소심)을 민간법원으로 이관하고, 1심을 맡는 각 부대 보통군사법원(30개)을 국방부 소속 다섯 개 지역 군사법원으로 개편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민간 법조인의 군판사 참여, 각 군부대 군검찰부를 참모총장 직속 각 군 검찰단으로 통합하는 내용 등도 모두 국회에서 논의·처리될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를 거쳐 온 군사법 개혁안은 21대 국회에도 여러 개 계류 중이다. “군은 전쟁을 준비하는 특수목적집단으로 평시 민간의 잣대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전시와 지휘 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번번이 반대해온 군내 목소리는 아직까진 수면 아래 있다.

28일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드디어 출범한다. 군 사법 체계도 논의될 예정이다. 휴전 중인 이 땅에서 MZ세대 장병들의 사법 권리는 어떤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