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제 부총리의 아파트값 고점론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집값을 잡겠다며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떨어지기는커녕 계속해서 올랐다. 특히 주요한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유난히 더 올랐으니 정부·여당으로선 답답할 노릇일 터다.

정부 전략이 조금은 바뀐 걸까. 이전까지 ‘집값을 이렇게 잡겠다’며 대책을 발표해온 정부는 최근 ‘집값이 곧 폭락할 것 같으니 사지 말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내고 있다. 이른바 공포 전략이다. 바뀐 전략의 선봉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섰다.

홍 부총리는 지난 3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이 물가 상승률을 배제한 ‘실질가격’ 기준으로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정받기 이전 수준의 고점에 근접했다”고 주장했다.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 2008년 5월 서울 아파트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올해 5월 가격(실질가격)이 99.5에 이르렀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경고성 메시지가 부정확한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부총리의 실질가격 논리(2008년 5월=100, 2021년 5월=99.5)가 성립하려면 지난 1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물가 상승률만큼만 올랐어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 기간 물가 상승률은 24.9%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정말 24.9% 정도만 올랐을까.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이 기간 24.6%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홍 부총리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수치다. 실제로 기재부는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를 바탕으로 실질가격을 계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는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집값 상승률이 너무 낮게 추산된다는 비판이다. 작년 12월에는 한국부동산원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고 표본 수를 늘리기로 해 올해 개편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부동산 통계를 집계할 때 주로 인용되는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51.4% 상승했다. 이 기간 물가 상승률(24.9%)의 두 배를 넘는다. KB부동산의 통계를 활용하면 실질가격 기준 2008년 당시 고점은 이미 넘은 지 오래다. ‘과거 고점’을 근거로 국민에게 공포감을 불어넣으려던 홍 부총리의 논리가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집값을 추론하는 데 실질가격을 근거로 드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한다. 향후 집값은 실질가격이 아니라 부동산 수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한 관료 역시 “현실 세계에서 누가 물가를 따져 아파트 매수 여부를 판단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