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확정된 ‘4차 추가경정예산 정부안’에서 단연 주목거리는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지원 명목으로 2만원씩 일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취약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라고 거듭 강조해온 추경예산에 왜 이런 항목이 들어갔는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59년 만에 처음 한 해에 네 차례 추경을 동원해야 할 만큼 비상시기라면서 빚을 내 조성하는 7조8000억원의 12%를 쓸 만큼 긴요하고 타당한 지출인가.

통신비 지원은 슈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선별지원이냐, 일괄 살포냐’로 대립했던 여당 핵심부의 마찰을 절충한 것이라는 전언도 있고, 추석을 앞두고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지도부의 선심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어떤 배경이든 위기극복 취지와 맞지 않고, 재정지출이 소비로 이어지는 효과도 극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적자재정’에 경고등이 켜진 와중에 어렵게 추진하는 4차 추경인 만큼 한 푼이라도 허투루 써선 안 된다. 그러려면 정부와 여당은 9000억원이라는 나랏돈이 얼마나 큰 돈이며, 이를 다른 곳에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올가을과 겨울, 코로나와 독감이 겹치는 ‘트윈데믹’을 막기 위해선 독감예방 접종이 꼭 필요한데, 3만~4만원 하는 백신을 자기 돈 내고 맞는 국민이 1100만 명에 달한다. 9000억원이면 연간 3000만 명의 독감 예방자 전부를 최대 3년간 무료 접종해 줄 수 있다. 갈수록 부실해지는 고용보험의 한 달치 실업급여비(1조원)에 근접한다. 또 노후 사회간접자본(SOC) 개선 등 내년 교통안전 강화 예산(1조원)이나, 정부가 미래 먹거리라며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2029년까지 집행하겠다는 연구개발 자금(1조96억원)과도 맞먹는 규모다.

이 정도의 혈세를 재난지원 원칙에도 맞지 않고, ‘추석민심 잡기’용으로 인식될 수 있는 통신비로 뿌리는 것은 명분도 효과도 없다. 1조원 안팎으로 시도할 만한 필수적·생산적 지출은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희귀병전문병원, 장애환자 재활 특화병원, 시범적 지방 공공의료원, 코딩교육 인프라 구축, 기타 긴요한 국책사업 등 얼마든지 있다. 그런 데 쓰는 것이라면 1조원이 넘은들 무슨 문제가 있겠나.

문재인 정부가 내세워온 ‘혁신성장’과도 거리가 멀다. “지지율 떨어지니 또 현금살포냐” “피해 맞춤형 지원한다더니, 이러려고 짠 4차 추경인가”라는 비난·비판을 면하려면 국회 심의에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극심한 흉년에도 ‘씨곡’은 움켜쥔 채 쓰러져갔다는 동서고금의 재난극복기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