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일제 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나온 지 2년 만에 일본 전범기업 자산 강제매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신닛테쓰스미킨(현 일본제철)이 수령을 거부한 압류결정문이 ‘공시 송달’을 거쳐 내달 4일 0시부터 발효된다. 일본제철이 포스코와 합작으로 설립한 국내 법인(PNR) 주식 중 4억원어치가 매각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 자산의 강제매각 사태에 대비해 강력한 보복조치를 검토 중이다.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 주한 일본대사 소환, 금융 제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세 인상, 송금 중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정부가 “현금화가 이뤄지면 돌이킬 수 없다”며 줄곧 반발해 온 점을 고려해 볼 때 자산매각이 실행되면 양국 간 ‘보복의 악순환’으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정부는 그간 “사법부 결정인 데다 피해자 의사가 최우선”이라며 불(不)개입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외교·안보 사안은 국제적으로도 ‘사법자제의 원칙’이 통용되는 데다 ‘현금화’가 메가톤급 후폭풍을 부를 것이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

국제 분쟁 해결절차인 ICJ로 갈 경우 승리를 100% 장담하기 힘든 엄연한 현실도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도 일말의 타당성이 있는 만큼 적절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문명국의 대처라고 할 것이다.

다른 국가를 상대로 ‘증오와 불신’을 이어가는 게 심정적 만족감을 줄 순 있어도 국익 차원에서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치명적이 될 경제보복은 물론이고, 당장 ‘G10’ 가입이나 WTO 사무총장 경선에서도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 지난 주말 열린 코로나 사태 관련 재외동포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에서 도움받은 점에 대해 고마움을 전해달라”며 주일대사 편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포용을 통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적 행보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