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주목받는 '혈장 치료'
혈액을 원심분리하면 55%의 혈장(血漿)과 45%의 혈구(血球)로 나뉜다. 혈구의 대부분은 빨간 적혈구다. 혈장은 옅은 노란색이다. 여기에는 현대 기술로 만들 수 없는 면역 성분이 들어 있다. 감염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의 혈장에는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형성된 항체도 포함돼 있다. 이를 환자에게 투입해 바이러스를 잡는 것이 ‘혈장 치료’다.

혈장 치료의 역사는 100년에 불과하다. 1918년부터 2년간 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때 1700여 명이 혈장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효과가 검증됐다는 기록은 없다.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 홍콩에서 약간 효과를 본 적이 있긴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완치자의 혈장을 환자 2명에게 투여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난달 중국 저장대 연구진이 코로나19 중증 환자들에게 혈장 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일부 환자 상태가 다시 악화돼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식품의약국(FDA)과 주요 병원들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의료진 역시 “환자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코로나19 중증 환자 2명이 혈장 치료를 받고 완치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준용·김신영 세브란스병원 교수팀이 그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71세 남성과 67세 여성에게 코로나 완치자인 20대 남성의 혈장을 투여하고 스테로이드 치료를 병행한 결과 두 명 모두 건강을 회복했다. 국내 의료진이 혈장 치료 효과를 입증하자 벌써부터 증권시장에서 관련 주식들이 강세를 보이는 등 반응이 뜨겁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검증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혈장을 확보하는 길이 완치자의 헌혈밖에 없다는 점도 한계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혈장의 항체를 추출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기증자를 많이 확보하고 혈장을 혈액은행에 보관할 체계부터 완비하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다. 한 명이 기증한 혈장으로 3~4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피를 나누는 사이는 가족과 같다. 이런 사람들의 혈관에는 혈연보다 더 깊고 따뜻한 사랑의 정이 함께 흐를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