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정치가 과학 묵살하면 재앙 온다
“중국 공산당이 전문가 말을 무시하고 감추려고 하다가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내 정치 참모와 보건 전문가 간 갈등이 심각하다.” “일본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림픽이 연기되자 감염자의 폭발적인 증가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대만과 싱가포르는 과학자와 보건 전문가들이 보낸 신호를 빨리 받아들였다.” “한국은 초기 대응에서 전문가 의견보다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다 사태 전개를 뒤따라간 문제가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인지, 세계정치기구인지 모르겠다.”

외신들에 등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평가들은 ‘정치와 과학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무슨 사태가 터지면 먼저 ‘과학적 대응’을 한 다음, ‘정치적 수습’이 뒤따르는 게 맞는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은 거꾸로 간다. ‘정치적 대응’을 하다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후 ‘과학적 수습’이 이어지는 식이다.

감염병은 ‘만약(If)’이 아니라 ‘언제(When)’의 문제라는 과학의 경고를 정치가 묵살한 것부터 그랬다. 코로나19의 조짐과 증거가 포착되기 시작한 단계에서도 정치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정치적 유·불리 계산이 과학을 압도하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말았다.

그러다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제야 정치는 과학과 전문가를 찾았다. 평상시에는 과학에 관심도 없던 정치가 뒤늦게 “예산 투입을 늘리겠다” “인력을 확충하겠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그것도 정치는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이 온갖 생색을 다 내면서 말이다. 익숙한 장면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과학과 정치는 서로 불편한 관계(uneasy bedfellows)”라고 규정한 바 있다. 과학은 ‘증거’와 ‘객관성’을 따지지만, 정치에서는 ‘주장’과 ‘설득’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정치와 과학이 등을 돌릴 수도 없다.

정치는 과학을 활용해야 국민에게 약속한 비전과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정책을 위한 과학’이다. 과학하기 좋은 환경과 자원배분은 정치적 의사결정을 거쳐야 한다. ‘과학을 위한 정책’이다. 정치와 과학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가 과학이 불편하다고 묵살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과학도 정치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정치와 과학의 관계를 어떻게 정상 궤도에 올려놓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형태의 ‘코로나N’의 출현을 우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불확실성은 높아진다. 재해 발생 시 사회가 극한 상황에 빠지지 않고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복원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철저한 복기와 반성으로 잘못을 고쳐나가는 나라가 승자가 될 것이다. 국가 간 과학 경쟁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불행히도 한국 정치는 외신을 타고 전해지고 있는 빠른 진단 검사 등 일련의 칭찬에 초기 대응의 문제점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남의 칭찬에 춤추는 모습을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내 언론은 비난 일색, 외국 언론은 칭찬 일색’이라는 이분법은 자기평가 능력의 부재 선언으로 들린다. 스스로 평가할 능력이 없는 국가에서는 과학이 꽃을 피우기 어렵다. ‘비난’과 ‘비판’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는 과학 발전과 같이 갈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을 말하고 있다. ‘공(功)은 과학, 책임은 정치’가 아니라 ‘책임은 과학, 공은 정치’로 혁신성장에 성공했다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 탈(脫)원전 정책처럼 과학을 재앙으로 여기는 정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재앙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을 묵살하는 정치에서 온다. 정치의 ‘과학 하대(下待)’, 빨리 청산해야 할 진짜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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