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27대 한국노총 위원장이라는 자리
새해 노동계의 관심사는 단연 오는 21일 선출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27대 위원장이다. 한 노동전문 매체가 노사정 전문가 100명에게 ‘경자년 가장 주목할 인물’을 물었더니 1위가 한국노총 새 위원장이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한 표 앞선 19표를 얻었다. 3위(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10표), 4위(21대 국회의원 8표), 공동 5위(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각 7표)와는 차이가 크다.

한국노총 새 위원장에 대한 높은 관심은 기대와 우려의 합작품이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말 제1노총 자리를 민주노총에 넘겨줬다. 27대 위원장은 제1노총의 지위를 잃고 처음 뽑는 위원장이다. 우려는 제1노총 탈환을 위해 세 역전을 위한 강성 투쟁에 나설 것인가로 모아진다. 사회적 대화 등에서 중심추와 안전판 역할을 해온 온건과 합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제1노총 탈환 공약

한국노총의 향후 행보 가운데 우려되는 최악은 ‘민주노총 따라하기’다. 민주노총은 전투적 조합주의, 전투적 실리주의로 일관해왔다. 노동운동을 전투화해 사용자를 압박하고 자기 몫을 챙겨왔다. 설립 23년 만에 제1노총이 된 것도 정규직 전환자를 중점 공략한 것이 주효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7대 한국노총 집행부의 행보에 대한 단초는 한창 뜨거운 선거전에서 얻을 수 있다. 공약을 압축 표현한 선거포스터 제목을 보자. 기호 1번(김만재-허권 후보 조)은 ‘자랑스런 한국노총! 거침없이 200만!’, 기호 2번(김동명-이동호 후보 조)은 ‘즉각적인 비상체제 운영으로 제1노총의 자존심을 되찾겠습니다’이다. 직설적이냐, 에둘러 말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제1노총 회복’에 방점이 찍혔다.

중앙단위 노동조직의 움직임은 정부 태도의 영향도 받는다. 법과 제도의 엄격한 적용이 아니라 관용으로 대응하면 다툼이 있는 세력 간 선명성 투쟁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6월 국회 불법진입을 시도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 6일 만에 풀려났다. 민주노총의 기업체 사장실 점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사무실 점거 등은 처벌받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강성투쟁에 대한 유혹을 쉽게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려 아닌 기대의 행보를

집행부가 유혹을 의연하게 떨쳐낸다 해도 같은 회사에 설립된 민주노총 조직에 위협을 느낀 산하 조직이 적극 대응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혹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양 노총의 ‘영토 전쟁’은 현실이 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포스코 등에서는 이미 세력 확장전이 치열하다. ‘총성’이 들려오고 집단행동이 표출되면 한국 대표기업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노사관계가 후진적’이라는 글로벌 경쟁사의 마타도어에 휘말릴 게 뻔하다.

한국노총은 1946년 창립돼 올해 74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진중하고 고민하는 노동운동을 보여왔다는 평가가 많다. 제1노총 지위를 잃었을 때도 투쟁적·도발적 성명은 없었다. 강경투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내부 설명도 들려온다. “선명성 경쟁을 벌여봐야 민주노총 2중대로 전락한다”거나 “단위 노조에서 투쟁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노동 생산성을 원천으로 하는 기업 경쟁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노동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속하고 있다. 균형 잡힌 노동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의 행보에서 우려가 아니라 기대를 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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