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증시 주변에서는 새로운 투자전략을 짜느라 분주해진다. 증권가에서 올해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유동성’이라고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동시다발적으로 금리인하 등 통화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적잖은 전문가들은 그 결과 풍부한 유동성이 글로벌 증시를 달구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경이 증권사 10곳을 조사한 결과 리서치센터장들은 올해 채권보다는 주식, 주식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오른 신흥국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를 늘리라고 조언했다. 풍부한 유동성에 글로벌 경기회복, 미·중 무역전쟁 해결 조짐까지 더해져 돈의 힘으로 주가를 밀어올리는 이른바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 호황 속에 한국 증시가 유독 부진(상승률 7.7%)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은 증시 반등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가 유력시되는 데다 잇단 부동산 규제로 시중 자금이 증시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주가에는 호재다.

하지만 유동성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돈으로 끌어올린 주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는 거품이 끼게 마련이다. 거품은 과거 ‘닷컴 버블’ 붕괴에서 드러났듯이 언젠가 반드시 꺼진다. 주가를 견인하는 진정한 힘은 기업 실적뿐이다. 유동성은 주가 상승세를 잠시 좀 더 가파르게 만드는 ‘양념’에 불과할 뿐, 결국엔 실적만이 장기 주가를 결정한다.

이는 5~6년 전 이미 “너무 비싸다”는 평가를 듣던 미국 애플의 주가가 지난해에만 85% 오르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약세로 반전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 주가 역시 지난해 55% 오르며 장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모두 지속적 실적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올해 증시의 향방도 풍부한 유동성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기업 실적이 좌우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가 ‘나홀로 약세’를 보인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12월 결산법인)의 연결기준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8.8%, 당기순이익은 45.4% 감소했다. 4분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6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20개 상장사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9.0%, 20.8% 줄었다. 기업 실적만 놓고 보면 오히려 증시가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증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업이 마음껏 뛰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도 수출도 늘고, 실적 호조와 주가 상승으로 저절로 이어진다. 노동·환경·신산업 관련 규제 등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온갖 족쇄를 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동성 아닌 기업 실적으로 증시가 활력 넘치게 만들어 보자. 그렇게 되면 악화일로인 고용시장에도 볕이 들고 추락하는 경제성장률도 반등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