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래된 번호, 그 축적의 시간
얼마 전 통지서 한 장이 날아왔다. 27년4개월, 장장 1만 일을 사용한 ‘011 번호’의 2세대(2G) 이동통신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기분이었다.

나름 국회의 얼리어답터를 자처했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이메일과 업무는 태블릿PC로 처리했다. 소셜미디어(SNS) 소통을 위한 스마트폰 역시 늘 최신기기를 이용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때는 언제나 011 번호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011은 단순히 번호에 대한 애착이 아니다. 내 정치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다. 첫 선거에서 제일 먼저 만난 유권자에게 전한 명함에도, 요즘 만나는 장·차관들에게 전한 명함에도 늘 이 번호를 사용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찾든 직접 소통하겠다는 고집이었다.

생일을 맞은 지역주민들에게 매일 직접 전화를 한다. 벌써 20년째다. 하루 20~30명, 한 해 1만여 명에 이른다. “정 의원, 아직도 전화번호 안 바꿨어?”라는 인사에 “어머니가 기억하시는 번호를 어떻게 바꿔요”라고 답하며 서로 웃는다. 011 번호는 나를 찾아주고 내 전화를 기다리는 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의 생일축하 전화라고 하지만 별다른 건 없다. 지난해 수술한 다리는 괜찮은지, 올해 수능 본 손주는 잘 지내는지, 내년 고구마 농사는 얼마나 지을지 여쭌다. 그리고 정치 좀 잘하라고 혼내시면 그냥 듣는다.

일상 얘기에서 정치적 훈수까지. 축하하기 위해 건 전화에서 오히려 용기와 위로, 그리고 정치의 방향과 정책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런 소소한 통화들이 주민들과 쌓은 축적의 시간이자 신뢰의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오래된 전화번호가 소중하다.

모든 기술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기업이 이윤과 행정적 편의만을 앞세워 그 축적들을 대체하게 한다면 소비자에게 외면받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역사와 역사를 잇는 것이 그 본분이지, 정당의 이익과 패권의 사익에 매몰되는 순간 국민에게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어떤 기업이든 충성고객에게 집중할 때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고 평생 고객을 확대할 수 있다. 정치도 그렇다. 모두가 내 편이라는 환상은 절대로 축적의 시간을 이길 수 없다. 내 오래된 011 번호를 알아봐 주는 주민들이 감사하다. 이 번호 역시 바뀔 터이지만 생일날 아침의 반가운 인사만큼은 변함없이 한결같도록 늘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