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5일은 56번째 ‘무역의 날’이다. 1964년 수출이 1억달러를 돌파한 11월 30일을 ‘수출의 날’이란 이름으로 기념하다가 1987년 수출과 수입을 함께 진흥해 무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무역의 날’로 명칭을 변경했다. 2011년 무역액이 1조달러를 달성하자 기념일을 12월 5일로 옮겼다.

기념하는 대상의 이름이 바뀌고 날짜가 옮겨진 연유만큼 우리 무역은 많은 변화 속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 1957년 유엔군에 처음 납품한 합판은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 중반까지 주력 수출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할리우드가 번창하면서 배우들의 분장용 가발 수요가 폭증하자 한국 가발은 대만산을 누르고 세계를 석권했다. 1973년 단일 기업 최초로 1억달러 수출의 주인공을 배출한 봉제의류를 비롯해 원양 수산물, 신발, 완구, 비누 등이 지금의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같은 지위를 누렸다.

만들기만 하면 해외에서 사가던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무역 증가율이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경제는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홍콩·중동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쳐 어두운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일본이 느닷없는 수출규제를 발동해 우리 기업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세계 경제는 중국의 부상, 보호무역주의 심화, 글로벌 밸류체인(GVC) 약화에 따른 세계 중간재 교역 둔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자유무역의 기치 아래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참여해온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많은 신흥국이 자체 공급 능력과 구매력을 높이면서 신흥국 간 중간재 교역이 급증하고, 신흥국이 최종 소비지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중국에 의존한 범용 제품 중심의 성장모델로는 우리 수출이 과거와 같은 성공 신화를 더 이상 써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 무역의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수출구조, 기술개발, 기업 생태계, 지원 및 규제 등에 대한 광범위한 혁신을 통해 무역의 부가가치를 높여 일자리 창출과 국민소득 증대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 무역은 이달 무역액 1조달러를 돌파해 3년 연속 무역 대국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도 올해까지다. 우리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