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公正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不公正

사회가 분열할수록
상대방 고통을 쾌락으로 느껴
포용과 통합의 정치로
易地思之하는 공감능력 키워야

현승윤 이사대우·독자서비스국장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부산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부산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공정한 사회’를 기치로 내걸었다.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을 준 ‘조국 사태’를 반전의 계기로 삼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을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첫걸음은 ‘교육’에서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며 “학생부종합전형의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사흘 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서울 소재 대학의 정시전형 비율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7일에는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 등을 2025년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현승윤 칼럼] 집권 후반기 文정부,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정시 비중 확대는 ‘특권층의 통로’로 비판받아온 학생부종합전형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자사고 외고 폐지는 고교 서열화를 없애는 평준화 조치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평준화 교육을 받고, 단일한 선발 기준으로 대학에 들어가면 한국 사회가 공정해질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저마다 능력이 다르다. 취향과 지향점도 제각각이다. 단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불공정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평등은 불평등이 된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다. 예컨대 폐로 숨을 쉬는 사람은 땅 위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는 물고기는 물속에서 산다. 이들에게 동일한 가치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 사회에도 포유류와 어류, 양서류 같은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여러 신념 체계와 가치관이 동시에 존재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다.

이런 세상에서 ‘공정한 교육’이 되려면 그 내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져야 한다. 정시를 확대할 게 아니라 학생 선발을 대학마다 또는 학과마다 달리해야 한다. 각양각색의 고등학교가 더 많이 존재해야 개성있는 인재들이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다.

누구에게 공정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공정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함은 법(法)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러면 방치하라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공정하게 바꿔가는 메커니즘은 따로 있다. 인간만이 지닌 공감능력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는 관점 전환능력을 통해 공정한 사회를 이뤄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규직 취업준비생이 불이익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구성되면서 일부 대표선수가 갑작스럽게 탈락했다. 이들이 겪은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끼는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 공정 사회로 가는 자연스러운 길이다.

한국 사회는 극심한 편 가르기로 공감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두 진영으로 갈리고 상대방 얘기를 듣지 않는다. 분열된 사회에서는 상대방 고통을 보면서 쾌락을 느낀다. 공감능력을 상실한 사회가 공정할 수 없다. 통합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회 통합이 아니라 법과 정책 집행을 통해 공정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모든 학교를 평준화하고, 모든 채용 면접관의 눈을 가려야 한다(블라인드 면접)고 생각한다.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법 또는 정책으로 강제하는 행위가 되레 한국 사회에 갈등을 초래하고 편 가르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민주화된 사회일수록 정부는 공정함에 집착해선 안 된다. 특정한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권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의 가치관에 포획된 공정함은 다른 계층에는 부당한 강요다. 공정의 기치를 더 높이 내걸수록 불공정의 늪에 더 깊이 빠질 수 있다.

대통령의 생각과 말 한마디로 제도가 바뀌는 것 역시 공정하지 않다. 대통령에게 그런 특권은 없다. 자사고 폐지가 시행령 사안이라고 해서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법에서 벗어나는 것은 인치(人治)다. 인치는 그 취지가 좋아 보이는 것일수록 더 경계해야 한다.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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