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핀셋 규제'로 부동산 잡겠다는 정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달 말 동(洞) 단위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핀셋 규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간택지에 도입하는 분양가 상한제를 동네 또는 아파트 단지별로 세밀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김 장관은 이달 초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설명하면서 “(부동산 투기) 과열지역을 대상으로 핀셋 규제를 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핀셋’이라는 단어 선택이다. 김 실장과 김 장관 모두 부동산 대책을 ‘핀셋 규제’로 설명했다. 핀셋은 손으로 집기 어려운 작은 물건을 집을 수 있는 도구다. 어울리는 조합은 ‘손톱 밑 가시’ 같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를 문제삼았을 때 핀셋 정책을 제시했다면 사람들은 무릎을 쳤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핀셋이라는 단어를 약간 다른 의미로 썼다. 극소수 특정 계층을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핀셋을 사용했다. 집권 첫해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초(超)고소득층과 초(超)대기업을 대상으로 증세하겠다”며 일반적인 ‘부자 증세’보다 과세 대상을 확 좁혔다. 정부와 여당은 이 정책을 홍보하면서 ‘핀셋 과세’라는 말을 꺼냈다. 중산층은 물론 고소득층까지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1 대 99’의 정치공학이다.

핀셋 과세가 성공작이라면 박근혜 정부 때 ‘거위털 뽑기’는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2013년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세법개정안을 설명하면서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듣는 수많은 ‘거위’가 매우 불편해했고, 이듬해 연말정산 대란이 벌어졌다. 이랬던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의 레토릭과 프레임 설정은 뛰어나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 핀셋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발상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투기가 과열되는 동네 또는 아파트 단지를 꼭 집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부동산 시장은 이런 핀셋 규제로 잡히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몸의 어떤 부분은 열로 달아오르고 다른 부위는 냉기가 흐르는 환자에게 핀셋을 들이대는 꼴이다.

주택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서 동시에 투기 성격이 매우 강한 상품이다. 수요가 많은 아파트를 보자. 공급하는 데 적어도 2~3년, 택지 조성 기간까지 합치면 길게는 10여 년이 걸린다. 아파트가 모자란다고 수입할 수도 없다. 분양을 받은 뒤 입주하기까지 ‘투기의 시간’은 피할 수 없다. 가격 변동의 이익과 손실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입주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기존 주택을 사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이 때문에 집을 살지, 아니면 전세나 월세를 구할지를 늘 고민한다. 전·월세로 이뤄진 주거 시장은 수급의 변동폭이 작다. 반면 주택매매 시장은 쏠림이 심하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역과 냉기가 흐르는 지역으로 확연히 갈린다.

주택매매 시장에는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투기꾼도 득실거린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투기꾼들이 아니다. 숫자가 훨씬 많은 실수요자들이 큰 흐름을 형성한다. 여기에 경기 사이클과 금리, 사람들의 주거 스타일과 취향 변화 등 각종 변수가 수급에 영향을 미친다. 핀셋 규제처럼 단기적인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주택 시장 안정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핀셋 규제는 뽑아낼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당국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과 근거인 공시지가마저 기준을 다르게 적용했던 사람들이다. 핀셋 규제도 그렇게 운용할 공산이 크다.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을 겨냥했던 핀셋 과세처럼 서울 강남 등 특정 지역을 타깃으로 정해놓고 집중 규제할 가능성이 있다. 투기꾼들을 핀셋으로 집어내 엄정 과세하면 당장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정책은 투기 단속일 뿐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