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기재부의 엉터리 국가재정 운용계획
기획재정부가 최근 국가재정 운용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내용이 황당하다. 우선 재정적자 규모가 터무니없이 크다. 마지막 3년은 작위적으로 짜맞추듯 매년 똑같이 국내총생산(GDP)의 3.9%를 재정적자로 쓰겠다고 했다.

국가재정 운용계획은 당해연도(올해)를 포함해 향후 5년간 정부가 재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자료다. GDP의 1.9%로 추정되는 올해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를 내년에는 3.6%로 늘리고, 이후 3년 동안은 매년 3.9%로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한국에서 재정적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이다. 이후 적자 규모가 GDP의 3%를 넘어선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4.7%)과 1999년(3.5%),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6%) 세 번뿐이다.

‘재정적자 GDP의 3% 룰’의 원조는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안정·성장 협약을 통해 회원국들의 연간 예산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2년 연속 위반하면 벌금 부과 등 제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에서는 2016년 국무회의를 통과한 재정건전화법안에 ‘3% 룰’이 명기됐다.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 변수가 있을 때는 3%를 초과할 수 있다. 이 법안은 그러나 대통령 탄핵 등 정치권 격변으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부는 왜 내년부터 연속으로 GDP의 3%를 넘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내려는 걸까. “적정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뭐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5월 발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산에 구애받지 말고 빈곤층 지원 등 ‘재정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라는 뜻이다. 기재부는 액면 그대로 국가채무비율 수치를 높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작년엔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초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던 것을 올해는 “40%대 중반 수준”으로 높이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올해 GDP의 37.1%(741조원)인 국가채무비율을 2023년 46.4%(1061조원)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재정수지는 경기 순환에 따라 변동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재정 지출이 늘고, 경기가 좋아지면 세수가 늘어난다.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재정 균형’을 강조하는 반면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재정지출 확대’를 중시하는 등 사람마다 시각에 차이는 있다. 하지만 케인지언들도 경기가 좋을 때에도 재정적자를 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국가재정 운용계획에서 “내년 이후 세계 경제 회복, 정책 효과 등으로 성장세 지속이 예상된다”고 해놓고선 GDP의 4% 가까운 대규모 재정적자를 4년 연속 내겠다고 했다. 논리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계획을 믿기 어려운 이유다.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45% 수준으로 관리한다고 해서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계 기업 금융 외환 부문에서 생긴 부실이 삽시간에 재정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재정 불량국인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구성국가로 전락했던 아일랜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4.8%에 불과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옮겨붙자 순식간에 재무불량 국가가 됐다. 국가채무 비율은 2012년 106.4%로 치솟았다.

경제위기 징후가 뚜렷해질수록 시장의 신뢰가 중요해진다. 선진국들조차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내보내려고 애쓴다. 재정위기가 휩쓸기 시작한 2010년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초우량국 독일은 그해 6월 사상 최대의 예산 삭감조치를 발표했다. 영국도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부가가치세도 올렸다.

한국은 어떤가. 요즘 주가와 통화가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큰 폭으로 떨어졌다. 수출도 줄고, 물가마저 하락하고 있다. 외교는 거의 ‘고립’ 수준이다. 이런 악조건에서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5년 안에 확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런 나쁜 신호를 내보내도 될 만큼 우리 경제는 튼튼한가.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