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기와 협업 대기업에 "갑질한다"는 정치권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또 한 명의 기업인이 증인으로 소환된다. 박양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이다. 박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이후 세 건의 사고로 하청업체 직원 5명이 사망했다”며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라고 주장했다.

‘위험의 외주화’는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위험한 업무를 떠넘긴다는 뜻이다. 정치권과 노동계가 만들어낸 말이다. 산업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 대기업을 비난하기 위해 자주 쓰인다. ‘대기업·정규직은 위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나도 괜찮지만, 중소기업·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전형적인 편가르기식 선동이 녹아 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에 내재된 불합리성은 차치하더라도, 박 사장을 국감장에 소환하면서 이런 말을 쓰는 게 맞는지부터 의문이 든다. 엘리베이터산업의 구조만 들여다봐도 잘못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빌딩 및 아파트 건축주가 승강기 설치 공사를 발주할 때는 제조사인 대기업과 설치·관리업을 하는 중소기업이 조합을 구성해 입찰하는 게 일반적이다. 제조 대기업이 설치·관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중소기업과 공동으로 영업활동을 한다. 승강기안전관리법에도 이런 영업 형태를 ‘공동 수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영업에서 ‘갑’은 공사를 발주하는 건축주(원청)다. 승강기 제조사와 설치·관리사는 공동으로 ‘을(하청)’이 된다. 실력 있는 설치업체를 파트너로 구하지 못하면 일감을 따내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에 제조업체가 설치업체에 ‘갑질’을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건축주가 설치업체를 직접 지정하거나, 설치업체에 지급할 금액을 정해주는 일도 드물지 않다.

환노위가 박 사장을 국감에 소환한 것을 두고 산업계에선 “정치권이 대기업에 갑질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티센크루프 관계자는 “각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르는 재판이 진행 중인데도 회사 대표를 국감장에 불러내는 것은 아쉽다”며 “회사가 먼저 보상 조치에 나서 피해자 유족들도 모두 불처벌 의사를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

독일계 기업인 티센크루프가 그동안 국내 고용 창출에 힘써왔다는 점에서도 이번 박 사장 소환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 회사의 지난달 말 기준 고용 규모는 1248명으로 지난해 말(1061명)보다 187명(18%) 늘었다. 박 사장 취임 당시인 2012년(860여 명)에 비하면 1.5배로 증가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 활력이 바닥에 떨어진 시기다. 잘못된 갑질 프레임에 갇혀 정치인들이 기업인을 국감장에 불러내 호통치는 구태는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