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교과내용 줄이면 사교육도 줄 것"이란 착각
정부도 참 당황스러울 것이다. 사교육을 잡기 위해 1년에도 수차례씩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교육비는 매년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수학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겠다며 행렬, 벡터 등 어려운 단원을 아예 수능 출제범위에서 뺐는데도 학원마다 학생들은 가득 들어차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미래 인재 양성에 꼭 필요한 수학 단원마저 ‘정치적’ 이유로 교육 과정에서 삭제됐고, 결과적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보도(한경 10월 7일자 A3면)하자 교육부는 다음날 설명자료를 냈다. “행렬, 복소수, 미적분 등의 심화된 학습 내용은 필요한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선택과목을 운영하고 있다”며 “‘진로와 적성’에 따라 필요한 학생은 원하는 내용을 충분히 선택해 배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장의 교사와 교육계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말한 ‘선택권’ 자체가 허구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의 고교 수학은 대입과 밀접하게 결부돼 있다. 수능에 나오지 않거나 입시에 불리하다면 ‘진로’에 꼭 필요한 학생이라도 행렬이나 미적분을 절대 안 배운다는 것이다. 데이터사이언스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수업시간 1분1초가 아까운데 행렬이나 벡터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없는 학생들을 보면 강의를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감조차 못 잡겠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에서 수포자(수학포기자)로 전락해 학원으로 되돌아오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박승동 메가스터디교육 부사장의 지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다.

사교육을 잡으려는 당초 교육당국의 목표 역시 교육 과정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오병근 한양대 수학교육과장(교수)은 “수능에서 학생들을 변별해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교육 과정만 줄어들다 보니 어떻게든 실수를 유발하려는 ‘킬러문항’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교육적으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학생들은 사교육을 더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한 현직 수학교사는 “입시 체제가 그대로라면 교육 과정이 싹 사라져 사칙연산만 남아도 수학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학습부담 경감’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교육당국이 사교육을 되레 부추기고 미래 인재 양성까지 내팽개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대형 사교육 업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올해 대형학원 실적이 나오면 잘 살펴보세요. 교육 제도가 갈피를 못 잡고 급변할 때마다 학원 매출은 늘어납니다. 미적분을 삭제하든 말든, 선택과목을 늘리든 말든, 교육 정책이 변화할 때마다 불안한 학부모는 결국 학원을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