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한·일 경제대전과 '외딴섬' 노동계
마침내 총성이 울렸다. 여당이 말하는 ‘한·일 경제대전’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령을 공포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를 일반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바꿔 타격을 입히겠다는 것이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기는 본격적인 전투를 예고하고 있다.

경제활동은 매 순간이 전쟁의 연속이다. 기획, 생산, 마케팅, 판매, 애프터서비스(AS)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그렇다. 제품의 질, 경쟁사 제품, 소비자 안목을 모두 이겨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일상의 전쟁이다. 경제 활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패배하더라도 충격이 제한적이다. 이윤을 포기하거나 해당 사업을 접으면 그만이다. 졌을 때의 충격이 매우 심하다면 그 기업이 도산하는 정도로 그친다.

戰士 사기 갉아먹어서야

한·일 경제대전은 사정이 다르다. 일상의 문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흥성과 쇠망을 담보한 한판이다. 자의든 타의든 내부 결속을 강요하는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절한 전략과 전술이 중요하다. 전략과 전술을 전장에서 직접 수행하며 적들과 싸우는 전사들의 충천한 사기도 또한 중요하다. 경제대전에서 전투 주체인 전사는 기업이다. 핵심소재 개발이나 관련 예산 배정, 제도 개선 등은 지원 기능에 그칠 뿐이다.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적전분열이다. 글로벌 시장 쟁탈전과 한·일 경제대전, 미·중 무역전쟁 후폭풍까지 떠안게 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로 강성 투쟁만을 고집하고 있는 노동계다.

민주노총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이틀간 총파업을 시작으로 대규모 릴레이 집회를 예정했다. 현대·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노조도 파업 수순을 착착 밟고 있다. 건설 노조와 타워크레인조종사 노조의 파업도 예고됐다. 작금의 사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외딴섬의 존재인 듯하다. 경제대전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장수까지 투옥 운운하며 흠집을 내고 있다. 집안 분란으로 전사들이 싸움에 집중하지 못했을 때 그 결과는 필패로 이어진다.

선진 노사관계 정착 계기로

세계경제포럼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은 특정 부문의 부진으로 전체 순위에서 불이익을 받는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부문이다. 그럼에도 노동계의 떼쓰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을 아직도 채무이행 각서로 써먹는 듯한 양상이다. 노동적폐 해소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노동할 권리만 앞세울 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해서도 노동존중이라는 기치를 앞세워 전임자 임금 지급 등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요구하고 있다. 노·사·정 대화 창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지난 3월부터 식물위원회로 만들어 놓고서도 말이다.

노동운동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와야 한다. 노조라는 울타리 속에 있는 10.7%의 근로자만을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한·일 경제대전 와중에도 기존의 행태를 답습한다면 국민으로부터 분명한 시그널을 받게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지혜이면서 리더십이기도 하다. 한·일 경제대전에서 형성된 우리의 결기를 노동계 조직 간 선명성 경쟁이나 파업·점거 등에 매몰된 투쟁 관행에서 벗어나는 출구전략으로 삼으면 어떤가. 화합과 효율, 경쟁력을 중시하는 선진 노사문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보면 또 어떤가. 노동계는 이제 외딴섬에서 나올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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