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정년 65세' 비겁하거나 안이하거나
‘정년 65세’ 논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을 지폈다. 이달 초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열 곳 중 한 곳의 논의를 거쳐 정부 입장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도 “당연히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계 분위기는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에 이어 설마 또…”라고 읽힌다.

정년 65세가 시대적 흐름인 것은 맞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육체근로자의 가동연한을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민 정서는 국민연금 지급 시기인 65세에 정년을 맞춰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70세 법안’을 추진 중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다. 명분이 거창할수록 리스크도 많다.

노사 협상카드부터 만들어야

정년 연장은 더더구나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노와 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인 까닭이다. 노동계는 노동존중을 지렛대 삼아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 연장 논의의 출발점은 명분만으론 부족하다. 국민적 공감대와 노사가 주고받을 수 있는 카드로 디테일을 메워야 한다. 그래야 균형과 형평과 건강성이 담보된다.

일방적 정년 연장이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는 이미 경험했다.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정년 60세법)’이다. 당시 최소한의 보완장치라고 한 임금피크제 도입 의무화는 포퓰리즘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인건비는 연령별 경직성이 강한 비용이다.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 연장으로 기업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요 제조업체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정년 65세 연장 논의로 사정은 달라졌다. 현대자동차는 노동계의 맏형 격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주력이 금속노조인데 금속노조의 주류가 현대차 노조여서다. 현대차 노조는 현재 59세까지 해마다 오르는 호봉제를 유지하고 60세가 돼서야 59세 호봉을 기본으로 급여를 산정한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정년을 65세로 늘리고, 60세 이상의 호봉 기준을 언급하지 않은 단체협약안을 마련했다. 65세까지 호봉이 계속 오르는 구조다. 이러고도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인사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인구정책 TF에 쏠린 눈

노동계 내부의 역학구조도 변수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전환 근로자 유입 등을 통해 세를 불리고 있다. 조합원 수 100만 명을 돌파해 한국노총도 앞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별 기업의 노사 협상에서 노조 계파 간 선명성 경쟁은 종종 돌발변수로 작용한다. 우위를 차지하려고 투쟁 강도를 높여 협상을 깨기도 한다. 민주노총보다 합리적으로 평가받는 한국노총은 공공부문 조합원이 많다. 박근혜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시범 도입한 곳의 상당수가 공공부문인데 최근 들어 속속 폐지됐다. 65세 연장에 필수불가결한 조치라고 설득한들 한국노총이 수용할까.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달리 노·사·정 협의 자리를 지켜왔다. 원만한 논의가 더욱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정년 65세 논의를 시작하면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우려스럽다. 쌍방 이슈인데도 협상 카드 언급이 아직 없다는 것은 노동계 눈치 보기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비겁하다. 명분과 불가피성이 있어 카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지나치게 안이하다. 인구정책 TF는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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