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 토요일 반도체·부품(DS) 부문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향후 3년간 180조원 투자와 4만 명 채용 계획,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투자 계획 등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반도체 불황,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등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미래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가 읽힌다.

특히 이 부회장이 “단기적 기회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근원적 기술 경쟁력 확보”라고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가운데 미국은 삼성전자의 경쟁자이자 협력자인 화웨이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 부회장 발언은 이 상황이 삼성전자에 기회가 아니라 위기가 될지 모르는 만큼 만반의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관세전쟁이 확산되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삼성의 글로벌 공급망도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불확실성이다. 급박하게 돌아가기는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협력 중소기업들도 비상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잇달아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과 달리 정부의 경제 인식은 달라진 게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 방송에 출연해 현재 경제 상황이 위기라는 지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부총리가 국회에 계류 중인 추경안과 관련해서는 “경제가 어려우니 빨리 처리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이기고 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위험한 것은 위기가 아니라는 정부와 위기를 절감하는 기업들 간 경제 인식의 괴리감에서 오는 엇박자일 것이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올해는 2%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1%대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위기 극복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