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동전과 디지털금융
고려 성종 15년(9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인 건원중보(乾元重寶)가 탄생했다. 오랜 기간 쌀과 포(布)를 화폐로 사용하던 당시 사회에서 동전이 교환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상업이 발전한 조선 후기 무렵부터 사용이 편리한 동전이 널리 쓰이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전은 그 쓰임이 다양했다. 부모님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동전과 새해 세뱃돈을 돼지저금통에 가득 모은 뒤 은행에 저금하곤 했다. 가끔은 남몰래 돈을 빼내 동네 구멍가게에서 군것질한 기억도 난다. 동전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후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신용카드 또는 간편결제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동전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계산대 앞에서 동전으로 셈을 치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은행도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추억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아쉽지만, 동전 제조비용과 유통량 감소 등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방향이다.

사라져가는 아날로그 동전의 자리를 디지털 금융이 대신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금융거래를 위해 사람들은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낸다. 핀테크 발전으로 등장한 간편 금융서비스로 인해 우리는 디지털 금융 시대가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낀다.

디지털 기술은 지급 수단뿐만 아니라 금융환경도 변화시키고 있다. 농협은행은 새로운 환경에 적극 대응하며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고객에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편리한 자산관리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빅데이터 시스템을 이용해 고객의 행동패턴을 분석하고 고객별 맞춤형 금융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과 협력해 새로운 금융생태계도 준비한다. 8일에는 은행권 최초의 ‘디지털혁신캠퍼스’를 서울 양재동에 구축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핀테크 스타트업과 혁신적인 기술을 발굴하고 비즈니스에 이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의 부족한 자금을 지원할 요량으로 혁신펀드를 꾸려 직접 출자도 하고 있다. 앞으로 기대가 큰 만큼 신줏단지 모시듯 정성을 쏟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디지털 금융은 우리 삶을 크게 변모시켰다. 하지만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지는 못한다. 은행이 디지털 금융에 집중할수록 디지털에 취약한 노년층과 농촌 지역은 소외될 수 있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마땅히 힘써야 하지만, 소외된 계층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금융의 역할은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아날로그의 따뜻함을 품은 디지털 금융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