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중·일 고전(古典)의 빛과 그늘
동양 사상의 물줄기는 2500여 년 전 공자의 유학(儒學)에서 발원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은 한자문화권의 인문학 교과서였다. 한·중·일 3국은 이 고전(古典)의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다른 근세를 경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 《계원필경(桂苑筆耕)》과 고려시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고전으로 꼽는다. 일본에서는 8세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만엽집(万葉集)》 등을 든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사상사는 문학·역사서보다 유학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유학 중에서 가장 득세한 교리는 성리학이다. 12세기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했다고 해서 주자학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경전 원본보다 주자의 해석을 중시했다. 주자의 교리와 다르게 해석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일본에서는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조선보다 자유롭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전환했다.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주자학적 해석을 거부하고 고전의 원래 뜻을 정독하는 고문사학(古文辭學)을 정립했다. 공자의 ‘인(仁)’을 ‘사랑의 이치이자 마음의 덕’이라고 본 주자와 달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봤다. 또 ‘학이’편의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억울해하지 않는다’로 풀이했다.

《논어》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도 달리 해석했다. 여기서 ‘습(習)’은 하얀(白) 새(羽)의 날갯짓을 뜻하므로 익히는 게 아니라 실천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보다 ‘배우고 열심히 실천하면 즐겁지 아니한가’가 본뜻에 가깝다고 했다.

그의 학문에 탄복한 다산 정약용은 이를 자신의 저서 《논어고금주》에 인용하며 “이제 그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를 훨씬 초월했으니 부끄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훗날 학자들은 공자사상의 ‘제가(齊家)’와 ‘치평(治平)’ 중 ‘제가’에 치중한 조선과 ‘치평’에 초점을 맞춘 일본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일본 근대화가 빨랐던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같은 고전이라도 받아들이고 활용하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본이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자국 고전 《만엽집》에서 인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시문집 《문선(文選)》에 이미 실린 내용이라는 지적이 일본 학계에서 제기됐다. 이래저래 고전 원류의 벽을 뛰어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불후의 고전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시작’이자 ‘가장 새로운 원천’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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