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맨땅의 기적 '코리안 미러클'
‘코리안 미러클(Korean Miracle)’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4년이었다. 언뜻 ‘한강의 기적’을 떠올리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동강의 기적’이었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여성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이 그해 평양을 방문한 뒤 ‘코리안 미러클’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북한을 극찬했다. 물론 북한이 보여준 것만 본 결과였다.

당시 북한의 공업생산력이 한국보다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1인당 소득도 1960년 북한이 130달러로 한국의 79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10년도 안 돼 한국 경제는 북한을 추월했고, 반세기 만에 세계 7위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최근 완간된 《코리안 미러클》 시리즈에는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주역들의 경험과 증언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미국 원조 시절부터 경제개발계획 수립 시기, 자율과 개방화, 중화학공업·산림녹화·새마을운동, 외환위기 극복, 사회보험 개발, 벤처기업 성장사까지 아우른다.

이 작업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각규·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사공일·이규성 전 재무부 장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전직 경제 관료와 언론인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그중 하나는 장기영·김학렬 두 경제부총리의 리더십 비교다.

두 사람의 업무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한국일보 창업주인 장 부총리는 직관을 믿고 이거다 싶으면 전광석화같이 추진했다. 반면 고시 출신 관료인 김 부총리는 관련 서적을 모조리 탐독하고 검증한 뒤 사업에 착수했다. 둘의 상반된 ‘정반합(正反合) 리더십’은 균형적인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됐다.

그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그 시절을 회고하며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규제 혁신”이라며 “공유경제와 의료·바이오, 빅데이터 등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기적’은 지금 시련에 직면해 있다. 무리한 정책 외에도 기업이 활력을 잃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의 기적이 과거형으로 끝날까 걱정된다. 한국을 배우고 싶어하는 개발도상국가들은 《코리안 미러클》을 교재로 활용하겠다며 영문판을 앞다퉈 요청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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