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7년 만에 처음으로 양자 협의를 요청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국 기업에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5일 “미 정부는 한·미 FTA 제16장(경쟁 관련 사안)에 따라 한국에 협의를 요청했다”며 “한국 공정위의 일부 심리가 미국 이해당사자에 증거를 검토하고 반박할 기회 등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USTR은 어떤 조사인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퀄컴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공정위는 2016년 특허 독점 및 불공정 라이선스 계약 강요 혐의 등으로 퀄컴에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사건처리 절차가 한·미 FTA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미국 측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USTR과 공정위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양자 협의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에 대한 태도다. 퀄컴은 휴대폰 칩셋의 독점적 지위를 앞세운 불공정 행위로 각국에서 소송을 당했다. 미국 내에서도 애플과 소송전을 벌여왔고 미국연방무역위원회(FTC) 는 2017년 1월 경쟁 저해를 이유로 퀄컴을 제소하기도 했다. 그런 ‘악명’과 ‘전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퀄컴 구하기’에 팔을 걷었다.

혹시라도 자국 기업이 외국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위법·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국가가 나서서 ‘최후의 지킴이’가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퀄컴뿐이 아니다. 올해 초 IBM,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 등이 중국 해커 공격을 받자 국가 차원에서 해킹 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잇단 항공기 추락으로 궁지에 몰린 보잉사를 “훌륭한 회사”라고 추켜세울 정도다.

장관급 인사가 해외에 나가 한국 기업을 비난하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중국 진출 기업들이 사드 보복으로 수년간 온갖 불이익을 당해도 한국 정부는 중국에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든든한 국가가 뒤에서 버텨주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