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식시장 부진 등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이 크게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큰 12개 주요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의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은 작년 1.21~1.78%의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DB형은 운용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회사가 퇴직금을 대부분 원리금 보장형인 정기예금에 넣어둔 덕분에 마이너스 수익률은 면했다. 하지만 근로자들이 운용을 지시하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대부분 원금까지 까먹었다.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 편입 비중이 80% 이상이지만 나머지 주식형 상품에서 10% 넘는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예금 이자만도 못한 퇴직연금 수익률…DC형·IRP, 원금마저 까먹기도
80~90%가 원리금 보장형인데 ‘마이너스’

20일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업권별로 퇴직연금 적립금이 많은 12개 주요 금융사의 작년 운용 성과를 살펴보면 정기예금 이자(한국은행 집계치, 11월 말 잔액 기준 연 1.93%)를 웃돈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DB형은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낮고, 예금금리가 높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에 대부분 금융사가 연 1.5% 안팎의 수익률을 냈다. 하지만 작년 물가상승률(1.5%)을 고려하면 DB형도 실질적으론 원금만 겨우 건진 셈이다.

DC형과 IRP는 대부분 금융사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냈다. 작년 코스피지수 수익률이 -17.28%로 주식형 상품에서 큰 폭의 손실을 본 탓이다. 퇴직연금사업자 가운데 주식형 상품 편입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의 퇴직연금(DC형, IRP) 수익률이 크게 부진했다. DC형은 삼성증권(-3.06%) 미래에셋대우(-2.83%) 등이 원금에서 3% 안팎 손실을 봤다. IRP에서는 한국투자증권(-3.06%) 미래에셋대우(-2.71%) 등이 저조한 수익률을 냈다.

국민 KEB하나 우리 등 주요 은행의 IRP 계좌 평균 수익률도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IRP 적립금이 3조6222억원으로 가장 많은 국민은행은 -0.29%, 1조9966억원인 KEB하나은행도 -0.46%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자는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에 80% 이상 담고 있는데도 주식형에서 10% 넘는 손실을 보면서 대부분 계좌가 원금 손실 상태”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에만 적립금 9조원 늘었는데

작년 대부분 금융사가 정기예금 이자는커녕 마이너스 수익률로 저조한 성과를 내면서 근로자들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주식시장이 부진했던 탓도 있지만 운용성과가 안 좋은데도 금융사들이 수수료까지 떼면서 원금마저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퇴직연금 자산이 급증하면서 업권별로 퇴직연금 유치전이 치열한 가운데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부진한 수익률이 지속되고 있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너스 수익률로 원금을 까먹었지만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금융업계는 수수료 인하, 고금리 예금 등을 앞세워 치열한 퇴직연금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금융업계는 퇴직연금 시장이 현재 170조원에서 2020년 210조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5개 주요 은행에서만 작년 9조2638억원 증가했다. 은행 가운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큰 신한은행은 전년(16조3027억원)보다 2조7613억원 늘어났고, 2위인 국민은행도 17조435억원으로 전년보다 2조4000억원 증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운용현황을 고시하면서 정확한 상품 정보 등을 제공해야 하지만 투자자들도 DC형이나 IRP의 경우 매년 적절하게 운용되는지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