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글날 영어마을 정책을 돌아본 이유
“한글날에 영어마을 기사를 쓴 이유가 뭔가요?”

한국경제신문 10월9일자 A1면 ‘그 많던 영어마을 어디로… 혈세 날리고 40%가 문 닫거나 용도 바꿔’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에게 받은 질문이다. 기사는 2004년 경기도가 국내 최초로 안산영어마을을 설립한 이후 14년간 전국 영어마을 28곳 중 11곳이 문을 닫거나 다른 기관으로 성격을 바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내용이다. 독자들의 질문은 ‘한글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날에 왜 영어교육 정책을 논해야 하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한글교육과 영어교육은 동떨어진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영어교육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면서 한글교육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유명무실해진 영어마을, 방과후 영어 금지를 둘러싼 혼선 등 정부가 영어교육 정책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학부모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교육 불신 속 ‘각자도생’ 영어교육은 사교육 경쟁, 과도한 영어 조기교육으로 이어졌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영어교육에 대한 분명한 교육철학 없이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영어마을을 짓기 시작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며 “기본적 사고의 틀이 갖춰지고 모국어 습득이 이뤄지기 전 영어 조기교육에 몰입하면 언어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결정적 시기’ 가설을 들어 정부가 영어 조기교육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일정 나이 전에 언어환경에 노출돼야 언어를 제대로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어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것과 주입식 교육은 다르다.

터키 속담 중에 “두 가지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두 번 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영어교육이 아이의 인생을 두 배로 풍성하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는 최근 ‘놀이중심 영어’를 강조하며 영어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나섰다. 교육부가 올해 말까지 마련하기로 한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이 학생들이 행복하게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