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의 데스크 시각] 문재인의 반면교사 노무현
“글쎄, 지지율이 높았다면 가능했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한 달여 앞둔 2008년 1월 중순 기자에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적으로 크게 잘못한 것이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에도 “크게 문제가 안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을 원치 않았다. 강한 어조로 “파병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달랐다. “당시 북핵 문제로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어려웠다. 레버리지를 쓸 게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본인의 소신과 달리 파병을 결정하고 여당을 설득해 2004년 파병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소신보다 국익 앞세운 盧정부

한·미 FTA 체결도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는 참여정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집권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지세력인 진보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를 밀어붙인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체결로 인해 지지층의 대거 이탈이라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지지율은 10%대까지 곤두박질쳤고 퇴임 때까지 그 충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해묵은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노무현 정부와 오버랩돼서다. 약 10년간의 간극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반면교사다. 지난주 여론조사기관인 갤럽과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나란히 58%로 나왔다. 취임 후 최저다. 콘크리트로 불리던 60%대 지지율이 무너지자 “문제는 경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업률과 생활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고통지수가 급등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던 청와대 대변인 논평도 “겸허히 받아들인다”로 바뀌었다.

정치 지도자는 숙명적으로 지지율의 딜레마에 빠진다. 좋은 정책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오히려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항이 심한 긴축보다는 재정 확대를 선택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지지율을 무시할 수도 없다.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지율 딜레마에 빠진 文정부

문 대통령도 지지율 하락이라는 2년차 징크스에 빠진 모양새다. 침체에 빠진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 규제 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오히려 지지층의 반발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보수층 민심은 끌어오지 못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져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면 ‘친구 문재인’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노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국익 관점에서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은산분리 완화, 원격의료 허용,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 지금 거론되는 규제 개혁 과제는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에 비교하면 ‘시시한 수준’이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단식농성까지 불사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최근 문재인 2기 청와대에 ‘노무현 키즈’들이 1급 비서관으로 대거 입성했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왜 실패했는지 알고 있을 테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무현 정부의 패배를 지켜봤다. 대통령의 선택은 노 전 대통령 표현을 빌리자면 필연적이다. 이 정도 반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