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국내 경기를 보는 시각이 비관론 쪽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KDI가 ‘경제동향 8월호’를 통해 “부진한 투자와 완만해지는 소비 개선 추세가 전반적으로 경기 개선 흐름을 제약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 그렇다. 내수가 부진한 데다 수출도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하방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KDI 경기전망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올 경제성장률을 정부 전망치(3.0%)보다 낮은 2.8%로 예상했다. 갈수록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골드만삭스가 당초 2.5%에서 3.15%로 성장률을 상향 조정한 미국 경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정부의 대표 공약이라고 할 ‘일자리 창출’은 실현이 더 어려울 것이다. 올해 상반기 취업자 증가폭은 14만2000명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하반기 이후 최저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기기 규제 혁신에 이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강조한 배경에는 이런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 말대로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혁신은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약 후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시민단체와 이들과 손잡은 일부 여당 국회의원. 낡은 관행을 고수하려는 기득권 세력이다. 공약에도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 공약 가운데 일자리 창출보다 더 중요한 공약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8만8000개의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완화는 물론이고, 18만7000~37만4000개의 일자리 창출효과를 예상한 원격의료 등 의료산업 규제 개혁에도 반대한다.

문 대통령은 “기존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말하는 그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것이 ‘무늬만 규제완화’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완화라지만 대주주 자격이나 자본 확충에 이런저런 제한을 두게 되면 규제완화의 실효성이 그만큼 떨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의료기기 규제혁신도 디지털헬스 등 새로운 의료서비스에 대한 규제완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없다. 정부가 검토 중이라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완화 역시 높은 ‘익명화’를 요구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을 고민한다면 상호 충돌하는 작은 공약들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한 규제혁신에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어영부영하다가는 일자리 창출도 혁신성장도 다 놓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