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기료까지 '뚝딱입법'으로 풀려는 국회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이 덕을 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떤 개선 방안이 있는지 공부해야 합니다.”

2016년 8월 여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에서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은 김광림 의원은 당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요구에 이같이 말했다. 그때도 여름철 전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서민 전기료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국회는 정부, 한국전력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당시 11배 넘게 요금 차이가 나는 6단계 누진제도를 ‘3배수 3단계’로 완화했다. 이렇게 하는 데 꼬박 3개월 넘게 걸렸다.

2년 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이 전국을 덮치면서 전기요금 체계 개편 요구가 또다시 빗발치자 ‘입법 만능주의’도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조경태 한국당 의원은 지난 1일 주택용 전기요금에서 누진제를 아예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도 폭염 또는 열대야 발생 일수가 10일 이상일 경우 자연재난으로 규정해 당월 주택용 전기요금을 30% 깎아주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2년 전에도 전기료 논란을 입법으로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당·정이 의원입법이라는 ‘쉬운 길’을 놔두고 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의 권한이 국회가 아니라 한전과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법안 하나 뚝딱 만들어 통과시키면 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누진제를 폐지하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피크 시즌’에 전기 절약을 유도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장 낮은 1단계 구간 요금을 쓰는 가구의 전기료는 오히려 인상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까지 맞물려 있어 연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하 의원은 전기요금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국민이 힘들어할 때 국회가 고민만 하고 있다면 근무태만”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입법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2년 전 경험을 통해 국회 구성원 모두가 알고 있다. 전기요금 개편 논의 전에 “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했던 김 의원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