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밑천 드러나는 소득주도성장론
문재인 정부가 핵심 경제정책으로 삼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서서히 그 밑천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주창자인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제 “일을 하는 근로자만을 기준으로 하면 근로소득은 전 계층에서 증가했다”며 “이게 지난달 31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근거”라고 설명했다. 궁색한 해명이란 생각이 든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의 소득은 역대 최고치인 8%나 감소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나 영세중소기업에 직격탄이다. 그런데 홍 수석은 임금근로자만 분석해 90%의 긍정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왜곡된 보고를 토대로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증가의 효과를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분석하면서 자영업자를 통계에서 제외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올 1월 기준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 모두를 합친 취업자는 2621만3000명이고 이 중 자영업자는 649만8000명(24.8%)이다. 이 가운데 최저임금이 조금만 올라도 고용에 직접적 타격을 받는 자영업자 내 피고용자는 166만3000명(25.6%)에 이른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 경제학계와 정부부처, 국제기구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개혁성향의 원로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급격한 추진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가격(최저임금)을 올리면 수요(노동시장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950년대에 도입해 1980년대 막을 내린 스웨덴의 ‘연대임금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는 내용이나 방향 면에서 다르지만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급격하게 올렸다는 점에서 참고가 될 수 있다. 연대임금은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을 지급함으로써 기업 간, 산업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노동자의 연대의식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노동조합의 제안으로 시행됐다.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수준은 중위수준까지 끌어올리고 고임금 사업장은 임금을 동결하거나 억제했다.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급격한 임금인상은 지급능력이 없는 많은 부실기업과 한계기업들의 경영난으로 이어졌고 저임금 근로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연대임금이 20~3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고임금 사업장의 임금억제가 큰 역할을 했다. 투자여력이 늘어난 고임금 대기업들은 공장을 짓거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고용을 늘리면서 저임금 사업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를 흡수했다. 경제학자들이 홍 수석의 소득주도 성장을 걱정하는 것도 실직 충격을 줄여줄 안정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고임금을 억제하지 않은 채 최저임금만 급격하게 올리면 저임금 근로자의 실직만 부채질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금 영세 중소사업장에선 최저임금이 또다시 두 자릿수로 인상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법 개정 이후 산입범위 확대로 저임금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이 줄어들게 됐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산입범위에 포함되는 상여금과 식비 교통비 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경영계에선 “이러려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나”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나오고 있다.

임금이 오르면 기업들이 고용을 꺼리는 건 당연하다. 어느 나라도 경제 수준을 뛰어넘는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성장을 시도한 사례는 없다. 어설픈 정책실험은 많은 국민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