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3분기 ‘깜짝 실적’을 전했다. 신한·KB·우리 등 주요 은행의 순이익(누적)이 벌써 지난 한 해 이익 규모를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저성장·저금리 고착화, 규제 강화, 글로벌 업황 둔화, 대규모 기업구조조정 등의 지뢰밭을 돌파하며 얻어낸 값진 성과다.

모처럼 들려온 희소식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웃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익의 질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번 수익 호전은 과열로 평가받는 부동산시장 호황에 힘입은 바 크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한 덕분에 저금리에도 일종의 박리다매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위험한 가계빚이 만들어낸 장밋빛 실적’이라는 뼈아픈 진단도 나온다. 비(非)이자수익 확대를 통한 수익다변화를 외쳤지만, 그 결과 역시 불만스럽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3분기 비이자이익은 이전 분기보다 30%가량 떨어졌다.

한국의 은행산업은 일시적 수익개선을 자축하기에는 너무 엄중한 위기다. 수익성만 보더라도 세계 바닥권이다. 자산수익률(ROA)은 0.4%로 미국 상업은행(1.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비이자이익의 비중 역시 10%대에 불과해 미국(37%) 일본 (35%) 독일(26%)보다 훨씬 낮다. 반면 영업환경 악화는 가파르다. 마이너스 금리 확산으로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 전통적 비즈니스모델은 한계에 부닥쳤다. 예대마진이 추락을 거듭해 2005년 3.7%포인트에서 6월 말 현재 1.96%포인트로 낮아졌다. 해외 진출 성과도 미미하다.

은행업을 재정의해야 할 정도로 경영환경은 급변 중이다. 핀테크에 기반한 개인 간 대출(P2P), 크라우드 펀딩, 인터넷 은행 등 새 경쟁자들의 돌격이 거세다. 빌 게이츠의 20여년 전 예견대로 ‘은행업은 필요하나 은행은 필요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긴장을 늦추다간 깜짝실적은 독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