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종신보험 신상품이 쏟아지는 이유 [슬기로운 금융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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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보험사들이 잇따라 종신보험 신상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반 종신보험이 아니라 여러 기능을 더한, 심지어 유병자도 가입할 수 있는 종신보험까지 등장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가계경제가 어려워지고 보험 신계약도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왜 장기상품인 종신보험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회계제도 변화'에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맞딱드린 회계제도 변화, 종신보험 신상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 다양한 '옵션' 탑재 종신보험 출시

과거에 비해 종신보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10년 이상 납부해야 하는 장기상품인데다 말 그대로 '사망해야' 보험금이 나오는 상품인 만큼 일반 보장성보험에 비해선 인기가 덜 한 상품으로 꼽히죠. 특히 종신보험은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남은 유가족을 위해 가입해두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결혼과 출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만큼 종신보험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묘년 새해가 밝아오자 보험사들은 다양한 종신보험 신상품들을 쏟아냅니다. 한 보험사는 연금전환 기능을 더해 보험가입금액의 최대 90%를 다른 형태로 변경해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종신보험인데도 3.5%의 높은 예정이율을 적용한 신상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종신보험에 '양육자금 자동인출 서비스'를 탑재해 자녀의 성장 시기에 따라 필요자금으로 꺼내쓸 수 있도록 한 상품도 등장했습니다. 5년 이내에 암진단이나 입원, 수술이력이 없으면 약 15%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는 종신보험도 올해 출시됐습니다. 보험료 납입기간을 구간별로 나눠 보험료가 점점 저렴해지는 상품도 눈에 띕니다. 종신보험에 다양한 '옵션'이 붙은 것이 올해 출시된 상품들의 특징입니다.

◆ 보험 부채, 원가에서 시가 평가로 변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험사들은 이율을 높인 저축성보험 판매에 주력했습니다.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은행 예금으로 돈이 쏠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자,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험사들도 잇따라 저축보험 금리를 올린 겁니다. 하지만 올해들어 새롭게 출시한 상품들은 대부분 종신보험, 보장성보험이죠.

보험사들이 보장성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올해부터 적용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보험사의 회계평가에서 그간 써왔던 기준이 아닌 새로운 국제기준을 적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제도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 제정한 원칙으로 당초 2021년 적용 예정이었으나 보험사들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올해 적용으로 유예된 바 있습니다. IFRS17의 핵심은 보험사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왜 시가로 평가할까요? 보험사는 미래에 가입자에게 지급할 보험금의 일부를 적립금으로 쌓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선 '부채'로 인식되겠죠. 보험사가 향후 고객에게 보험금 100만 원을 돌려줘야 하는 계약을 맺었다면 현재 회계제도에선 10년이 지나도 보험사의 부채는 고스란히 100만 원으로 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원가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은 경제,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위험을 정교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시장 흐름을 반영해 다양한 위험을 세밀하게 파악하자는 취지입니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7%대 수익을 보장하는 저축성보험을 팔았을 경우, 기존에는 7%대 수익을 낼 것으로 가정해서만 적립금을 쌓아도 됐지만 IFRS17이 적용되면 향후 금리가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해 저금리로 줄어드는 운용수익을 감안하고 훨씬 더 많은 적립금을 쌓아야 하는 겁니다. 시가평가인 만큼 시장금리가 반영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만큼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대량 판매한 보험사들은 앞으로 쌓아야 할 적립금, 부채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생각보다 보험사들이 신경써야 할 사안들이 많아지겠죠.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들은 부채가 크게 인식되는 연금이나 저축성보험보다는 종신보험 판매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종신보험은 향후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에만 보험금이 지급되는 만큼 저축성보험에 비해 의무적으로 가입자에게 돌려주는 돈이 적게 잡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쉽게 설명하면, 새 회계제도에선 시장 상황 등 보험사 수익성에 반영되는 지표들이 많아지다보니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이 적게 잡히는 보장성 상품이 회계상 유리하다는 의미입니다.

◆ 서비스마진 많이 남는 상품이 보험사에 유리

이 같은 회계방식 때문에 새롭게 도입되는 것이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이라는 지표입니다.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만큼 보험금뿐만 아니라 사업비 등이 전부 고려되겠죠. 보험영업 수익의 인식 방법이 단순히 보험료가 아닌, 해당 기간에 제공된 보험서비스를 중심으로 변경되기 때문입니다. CSM은 보험사가 미래에 얻게 될 예상이익을 예측한 개념을 의미하는 만큼 새 회계제도에선 CSM 규모가 큰 보험사가 체력이 탄탄하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CSM이 높은 상품으로는 암보험 등 건강보험, 종신보험, 치매간병보험, 자녀보험과 운전자보험 등이 꼽힙니다. 예정된 고금리로 저축된 보험금을 무조건 되돌려 주는 것보다 사고발생률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품, 발생률에 따라 보험금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아도 되는 보험이 보험사 입장에선 '마진'이 높다고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최근 보험사들이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이유로 금리를 높인 저축성보험을 주로 판매해왔지만, 앞으로는 저축성보험 판매를 크게 줄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CSM 규모가 큰 암보험이나 간편심사 건강보험, 종신보험 판매에 더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 슬기로운 TIP

그간 보험사들이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잘 줄 수 있는 지를 파악하기 위한 건전성 지표로 지급여력비율(RBC)을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새 회계제도가 적용되는 만큼 보험사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도 달라져야겠죠.

이에 금융당국은 기존 RBC비율 대신 모든 자산과 부채를 시가 평가하는 신지급여력제도(K-ICS)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장수, 해지, 사업비, 대재해, 자산집중위험 등이 신규 측정 리스크로 추가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지급여력기준금액을 산정할 때 충격 시나리오방식을 도입해 보다 정교하게 자산과 부채의 변동성을 반영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회계제도 이야기라 다소 복잡할 순 있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보험사가 과연 제대로 보험금을 돌려줄 수 있는 지' 판단하는 건전성 지표가 보다 정교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RBC비율 100%선을 건전성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이번 신지급여력제도 적용으로 보험사들의 건전성 지표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 확인해 보는 것도 포인트입니다.
새해 종신보험 신상품이 쏟아지는 이유 [슬기로운 금융생활]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