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상승률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인플레이션 불안이 커지면서 유럽중앙은행(ECB)에 금리 인상 압박이 가중될 전망이다.

유럽도 물가상승률 사상 최고…ECB, 금리 인상 '기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유로존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9% 급등했다. 시장 예상치인 4.5%를 크게 웃돌았다. 높은 에너지 가격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천연가스,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27.4% 급등했다. 식료품, 서비스 가격 상승률도 ECB의 연간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식료품과 에너지 등을 제외한 근원 CPI는 1년 전보다 2.6% 올랐다.

CNBC방송은 “ECB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출현 등으로 코로나19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높은 물가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ECB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침체된 실물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올 들어 물가가 크게 치솟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ECB는 “내년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높은 물가가 ‘일시적’이란 입장을 고수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기준금리를 너무 빠르게 인상해 유럽 전체를 1년여간 경기침체에 빠뜨린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해서다.

그러나 과거 동·서독 통일로 물가 폭등 공포를 경험했던 독일을 중심으로 “ECB가 신속히 통화 긴축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이날 “물가 상승 전망을 더욱 부추길 정도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독일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2%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입장으로 돌아선 터라 ECB의 안일한 대응이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루이스 데 귄도스 ECB 부총재는 이날 프랑스 경제매체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의 주범 중 하나인) 공급망 차질 현상이 내년에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상승이 일시적이 아닐 수 있음을 시인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