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초강력 국제공조가 北 김정은 움직였다] '단계적 비핵화'는 북한에 또 핵개발 시간만 벌어줄 가능성 커
北, 이번에도 시간벌기용 협상 의구심

김정은은 지난달 25~28일 중국 방문에서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단계적 조치”를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오는 5월 중 개최될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의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이 요구하는 ‘선 핵폐기-후 보상’ 방침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이 이번에도 과거 비핵화 협상에서 보여온 특유의 ‘살라미 전술’(하나의 협상을 여러 협상으로 쪼개는 외교 전략)을 반복하며 시간만 벌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1993년 6월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계기로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 회담으로 북한은 NPT 탈퇴를 유보했고 핵사찰 수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1994년 북한이 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그해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서 북한 핵 동결과 경수로 제공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성사됐지만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북·미 관계는 경색됐다. 북한은 2002년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시인했고, 이듬해 1월엔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북·미 제네바 합의도 휴짓조각이 됐다.

이후 북·미 대화는 다자 대화인 6자회담으로 확대돼 풀리는 듯했다. 2005년 7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체제 안전 보장을 골자로 하는 ‘9·19 성명’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고, 북한은 대포동 2호 발사와 핵실험으로 맞서면서 북·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북한과 대화를 시도했다. 북·미는 2007년 북한 핵시설 동결 이행 절차를 구체화하는 ‘2·13’ 합의를 맺었다. 또 같은 해 말까지 북한이 영변의 핵 시설을 불능화하고 핵 프로그램 신고를 의무화하는 ‘10·3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은 후속조치 일환으로 2008년 중국에 핵시설 및 핵물질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시료 채취를 비롯한 과학적 검증에 대해선 완강히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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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협상으로 시간 벌며 6차례 핵실험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때도 북·미 대화는 이뤄졌다. 북·미는 2012년 우라늄 농축 중단과 대북 식량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2·29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북한이 그해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이듬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양국 관계는 사실상 중단됐다. 북한은 이후 지난해까지 총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북·미 대화의 과거 전례로 볼 때 김정은이 언급한 ‘단계별 비핵화’를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협상하지 않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이다. 북한이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복귀하면 남북 경제협력 논의를 시작하고 IAEA의 사찰을 받으면 미국의 제재를 풀어주는 식의 기존의 단계적 해법으로 풀 경우, 북한이 핵 사찰 요구를 또 다시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의 ‘단계별 비핵화’ 전략은 비핵화 의지는 없이 시간만 벌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정상회담이 과연 북한 핵의 폐기로 매듭지어질지, 아니면 북한에 단지 시간을 벌어주며 국제 제제만 풀어주는 것으로 끌날지 주목된다.

◆NIE 포인트

북한의 ‘시간벌기용 핵협상’ 사례를 구체적 으로 알아보자.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조치’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지도 생각 해보자.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김채연 정치부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