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채 12일 저녁 서울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 골목길에 들어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채 12일 저녁 서울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 골목길에 들어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출발한 지 약 21분 만인 12일 오후 7시37분께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했다. 승용차에서 내리기 전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 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짙은 남색 코트에 ‘올림머리’를 한 그는 시종일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지난 10일 자신에 대한 파면 선고가 내려진 뒤 이틀간 침묵해온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친박’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환호에 엷은 미소로 화답했다. 마중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저로 들어가기 전엔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일부 지지자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오열하거나 쓰러지기도 했다.

◆‘드라마’ 같았던 삼성동 귀환

[사저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 "억울해!" 외친 지지자들…박 전 대통령, 눈물 글썽이며 미소로 인사
박 전 대통령의 이날 삼성동행(行)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청와대 측은 오전까지만 해도 “13일 아침에 떠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동 자택 안팎은 아침 일찍부터 주인을 맞을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장판을 교체하는 인부들을 시작으로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실은 트럭이 오갔다. 인터넷 설치기사들도 바삐 움직였다. 오후 들어 사저 입주 준비가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을 만나 퇴거 일정을 협의했다. 일부 참모는 “내일 오전에 떠나시는 게 좋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더 지체할 이유가 없다. 저녁에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오후 4시께 이미 800여명(경찰 추산)에 달하는 지지 인파가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에 모였다. 경찰은 100여명의 경찰인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청와대에서 참모 및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검은색 에쿠스 차량을 타고 오후 7시16분께 청와대 정문을 나섰다. 차량은 경찰의 엄중한 경호 속에 삼성동 자택으로 향했다. 독립문과 서울역, 삼각지, 반포대교를 거치는 코스를 따라 시속 80㎞로 이동했다. 박 전 대통령 차량과 수행원이 탄 검은색 카니발 등 7대가 한꺼번에 이동하자 그 뒤로 언론사 차량 10여대가 따라붙기도 했다.

◆알듯 말듯 미소로 화답

‘하이라이트’는 자택에 도착한 직후였다.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밝았다. 그러나 환하게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1000여명(경찰 추산)의 지지자들이 사저부터 봉은사로까지 늘어섰다. 골목길 200여m는 “박근혜” “대통령”을 외치는 인파로 가득찼다.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던 지지자를 향해 박 전 대통령이 차 안에서 손을 흔들자 골목길은 금세 울음바다가 됐다. “너무 억울해!”라는 한 지지자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 섞인 절규가 골목 안을 뒤덮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자택 앞에서 승용차에 내려 마중 나온 친박계 의원 등과 일일이 악수와 함께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자택 안으로 향했다. 박 전 대통령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지지자들은 계속 남아 “탄핵 무효”를 외쳤다. 곳곳에서 탈진한 지지자들이 쓰러지는 모습도 보였다.

◆네 명의 수행원과 남겨진 전직 대통령

삼성동 자택은 박 전 대통령이 1997년 정치에 입문하고 4선 의원을 거치면서 줄곧 머무른 곳이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첫 여성 대통령’의 영광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다. 일요일을 맞아 외출한 시민 중 일부는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앞 삼거리 등에서 경찰 순찰대의 호위 속에 도심을 지나는 박 전 대통령 차량 행렬을 지켜봤다.

이날 오후 자택으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측근과 경호 및 의무 관계자 등 네 명의 보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동 사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복귀를 기다리던 한 측근은 “박 전 대통령께서 사저로 들어가신 뒤 잠시 따라 들어가 보니 실내도 매우 좁고 보좌하는 인력도 네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저 안에는 새로 설치한 보일러를 가동한 탓인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약간 있었고, 침대 매트리스는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주변에는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과 윤전추 선임행정관, 여성 경호관 한 명, 남성 비서 한 명 등 네 명이 있었다는 게 이 측근의 전언이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휘/장진모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