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한류노믹스' 배우는 하버드대
벌써 한참 전이다. 외국 공항에서 삼성 광고를 ‘발견’하고는 뿌듯한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기억. 2000년대 초 일본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겨울연가와 욘사마(배우 배용준) 얘기를 했고, 홍콩이나 중국에 가면 택시기사들부터 드라마 대장금을 언급하며 한국에 친밀감을 나타냈다. 이렇게 시작된 한류는 유튜브를 휩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거치면서 아시아를 넘어섰다. 이제는 K드라마와 K팝뿐 아니라 K뷰티 K푸드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CJ 문화산업과 한류 확산

KOTRA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한류로 인한 총 수출액은 70억3000만달러(약 8조원)에 이른다. 한류는 단순한 문화 전파가 아니라 수출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변화 뒤에는 한 발 앞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K팝 스타들을 키워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방송사들이 있고, 문화를 산업 차원으로 끌어올린 CJ 같은 기업이 있다. CJ가 2012년부터 해외에서 개최하고 있는 케이콘(K-CON)은 공연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릴 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이 자사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을 마련, 기업의 현지 진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 민간 기업이 자국 문화 홍보에 앞장서고, 이를 영화와 외식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와 연계하는 CJ의 문화사업 모델은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학생들이 사례연구로 배우고 있다.

한류가 수출에 기여하는 ‘무형의 인프라’라면, 해외에 진출한 백화점 마트 홈쇼핑 등 유통사들은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실질적 플랫폼’이다. 많은 유통사가 해외 진출을 하면서 초기에 비싼 수업료를 내기도 했지만 동남아시아 각국과 중국 몽골 터키 멕시코 등에서 ‘K쇼핑’을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킨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것이다.

K쇼핑, 中企 수출 플랫폼

다국적 기업들도 한류와 한국 소비자의 ‘선도적인 특성’을 인정해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인재(人材) 수출’로도 이어진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P&G는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사장단회의에서 각국에 필요한 인력을 전부 한국에서 뽑아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한류의 영향력이 커진 것과 함께 ‘한국 사람들은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P&G 고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문화산업과 수출은 이처럼 밀접한 관계다. 과거 서구에서 일본 문화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된 것은 일본의 경제력과 함께 뻗어나간 소니 콘텐츠의 힘이었다. 한류에 자극받아 일본 정부가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쿨 재팬(cool Japan)’ 전략은 기대만큼 효과를 못 내고 있다는 평가다.

예전에 해외에서 삼성 휴대폰이나 LG TV를 보면 왠지 으쓱했던 것처럼, 요즘은 뉴욕에서 파리바게뜨 매장을 마주치고, 홍콩 쇼핑가에서 명품 대접받는 ‘설화수’를 볼 때 비슷한 기분이 든다. K브랜드들이 더 활개를 펴기 위해선 한류가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국가 브랜드를 ‘제대로’ 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한류 확산과 소비재 수출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들이 한껏 움직일 수 있게 밀어주는 것이다. 혁신하고 새 모델을 만드는 것은 늘 기업이다.

박성완 생활경제부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