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세계 어디서든 같은 서비스"…힐튼 '호텔 왕국'을 세우다
세계 어디서든 같은 브랜드 호텔을 만날 수 있는 ‘호텔 체인’을 최초로 구축한 기업이 있다. 할리우드 스타 패리스 힐튼의 증조부인 콘래드 힐튼이 창업한 힐튼호텔이 그 주인공이다. 시작은 텍사스주 작은 마을의 한 호텔이었다. 힐튼은 특유의 사업 수완을 발휘해 호텔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이후 호텔 매입과 개업을 통해 사업을 키워나가면서 호텔 체인을 구축했다.

이렇게 시작한 호텔사업은 올해 기준 102개 국가에 4660개 이상의 호텔과 리조트를 보유한 호텔그룹인 ‘힐튼 월드와이드’로 성장했다. 힐튼 월드와이드는 힐튼호텔&리조트뿐 아니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리조트, 콘래드 호텔&리조트 등 13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76만5000여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힐튼은 객실 수 기준 호텔업계 1위다.

최초의 글로벌 호텔 체인

콘래드 힐튼
콘래드 힐튼
힐튼호텔의 창업자인 콘래드 힐튼은 노르웨이 출신 이민자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미국 텍사스주 남부 샌안토니오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1907년 미국 대공황으로 가진 돈을 거의 잃었다. 힐튼은 행상, 은행원, 호텔 벨보이 등을 전전했다.

1919년 그는 어렵게 모은 5000달러를 들고 텍사스주 시스코로 이주했다. 은행원 경력을 살려 종잣돈 외에 투자자들의 자금을 보태 은행을 매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다른 기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묵으려고 찾아간 모블리호텔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이곳에선 당시 오일붐을 타고 몰려든 사람들이 방을 구하기 위해 하루종일 줄을 서 있었다. 그는 호텔 경영이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모블리호텔의 주인은 오일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호텔을 팔고 싶어 했다. 힐튼은 며칠 만에 3만5000달러를 모아 이 호텔을 샀다. 이 호텔은 힐튼호텔의 모태가 됐다. 그는 텍사스의 여러 호텔을 순차적으로 매입하거나 새로 지었다. 1939년에는 텍사스를 벗어나 뉴멕시코에 첫 호텔을 지었고 미국 전역으로 호텔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25년부터 그는 소유 호텔에 힐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재산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위기가 지난 뒤 주변 호텔을 적극적으로 인수해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호텔을 힐튼 브랜드로 묶어 체인으로 운영했고, 힐튼호텔은 세계 최초 호텔 체인이 됐다. 그는 ‘호텔왕’으로 불리며 아메리칸 드림의 대명사로 부상했다.

‘공항호텔’ 첫 시도…혁신 선구자

[BIZ Insight]  "세계 어디서든 같은 서비스"…힐튼 '호텔 왕국'을 세우다
힐튼호텔은 호텔업계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가장 익숙한 기업이다. 세계 최초 호텔 체인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1955년에는 ‘중앙예약 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힐크론(HILCRON)’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는 전화, 전보 등을 통해 중앙 예약 서비스 사무실로 연락하면 세계 어느 호텔이든 예약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힐튼은 ‘공항호텔’ 아이디어도 처음으로 내놓았다. 1959년 힐튼은 샌프란시스코공항에 첫 공항호텔을 세웠다. 380개 방이 마련된 이 호텔은 공항 근처에 있어 비즈니스 여행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콘셉트는 이후 뉴올리언스에 이어 다른 공항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카지노사업에도 진출했다. 카지노사업에서도 혁신은 계속됐다. 건물 천장에 카메라를 달아 감시 인력을 줄였다. ‘팟오골드’라는 유명한 슬롯머신을 도입해 대박을 터뜨린 것도 힐튼의 카지노호텔이었다. 힐튼은 리조트사업에도 투자했다.

기업문화 살려 회생

힐튼호텔 프랑크푸르트
힐튼호텔 프랑크푸르트
2007년 말부터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호텔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해 미국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힐튼을 260억달러(약 26조5600억원)에 인수했다. 힐튼은 회생이 어려워 보였다. 2009년에는 힐튼의 회사 가치가 30%로 줄었다.

2007년 당시 힐튼의 구원투수로 크리스토퍼 나세타 최고경영자(CEO)가 영입됐다. 그는 호스트호텔앤드리조트 CEO를 지낸 호텔업계의 베테랑이었다.

힐튼 CEO가 된 그는 호텔을 둘러본 뒤 통합된 기업 문화가 없는 게 문제라고 인식했다. 각 지역 호텔은 서로 다른 운영 지침과 별도의 전문 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세타는 한 기자회견장에서 “각기 다른 기업가치 선언문을 30개까지 세다가 그만뒀다”며 “호텔들이 ‘우리를 내버려 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9년 나세타 CEO는 새로운 문화를 불어넣기 위해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힐튼 본사를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근무지가 바뀌자 직원 600명 가운데 130명만 따라 나섰다. 나세타 CEO는 “문화를 바꾸려면 사람들을 80%는 바꿔야 한다”며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 매클레인으로 떠났다.

나세타 CEO는 매클레인에서 기업 문화를 단일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힐튼의 영문 철자 6개로 구성된 단순한 기업가치 선언문을 마련했다. 그 내용은 환대(hospitality), 진실성(integrity), 리더십(leadership), 팀워크(teamwork), 주인의식(ownership), 지금(now)이었다. 그는 호텔 직원들에게 익숙해질 정도로 이를 교육시켰다. 또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면 이익을 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아시아, 유럽 등 지역에 적극적인 투자도 병행했다. 이후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2013년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조달금액은 27억달러를 넘어서며 호텔업계 역사상 최대 IPO 기록을 달성했다.

힐튼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2억7000만달러로 뛰었다. 이익도 6억73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공유숙박업체에 맞설 전략은

힐튼은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에어비앤비를 필두로 한 공유숙박업체가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세계 1위 호텔 체인인 힐튼호텔을 넘어섰고, 시가총액도 힐튼과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힐튼은 에어비앤비의 주고객인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도심에 저렴한 숙박비의 호텔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나세타 CEO는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호텔투자포럼에서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 싼값의 소형 호텔 브랜드를 선보일 것”이라며 “호스텔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