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론조사와 암수(暗數)
1936년 미국 대선 때 인기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무려 1000만명에게 발송한 우편엽서 조사로 랜든의 승리를 예측했다.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루스벨트의 압승이었다. 망신살이 뻗친 리터러리는 2년 뒤 폐간했다. 반면 신생업체 갤럽은 불과 1500명을 면접조사해 결과를 정확히 맞혔다. 1948년 대선에선 갤럽이 낭패를 봤다. 듀이 50%, 트루먼 44%로 예측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덩달아 성급하게 듀이가 이겼다고 보도한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은 세계적인 오보를 날렸다.

오류 원인은 표본 추출(표집)에 있었다. 리터러리의 조사대상은 구독자, 자동차 소유자, 전화가입자 등 중상층에 국한돼 샘플링 편향을 초래했다. 갤럽이 틀린 것은 모든 유권자가 표본에 선정될 확률이 동일한 확률표집이 아니라 지역·성별·연령별로 미리 할당된 숫자만 채운 비확률표집에 의존한 탓이었다.

이런 오류를 반성하고 여론조사기관들은 기법의 과학화에 주력하지만 요즘도 틀리는 게 다반사다. 표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표본 설정이 어려운 데다 설상가상으로 본심을 감추는 유권자들이 점점 늘고 있어서다.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는 ‘암수(暗數, dark figure)’, 즉 ‘숨은 표’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영국 총선에서도 모든 여론조사기관이 초박빙을 점쳤지만 결과는 보수당의 단독 과반이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보수파, 즉 ‘샤이 토리(Shy Tori)’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는 1987년 대선부터 여론조사가 도입된 이래 선거마다 여론조사 홍수다. 20대 총선의 여론조사만도 1404건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양적 팽창만큼 질적 개선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조사기관마다 엎치락뒤치락 하고, 하루 만에 후보 간 지지율이 20%포인트나 왔다갔다 하니 못 믿을 여론조사란 소리를 듣는다.

여론조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도 있다. 201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대의원 투표에서 뒤진 이명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뒤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야권성향의 응답자들은 BBK 등 허점이 많은 이 후보가 본선에 나와야 유리하다고 보고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이번 총선도 각 당의 후보 경선에서 역선택이 적지 않았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무조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선거가 잦아질수록 한국 유권자들은 속내를 감추는 데 능숙해지고 있다. 출구조사가 매번 틀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선거는 여론조사기관들의 대목인 동시에 위기인 셈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