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보의 유토피아
“맑은 강 한 굽이가 마을을 안고 흐르니 긴긴 여름 강마을은 일마다 그윽하다. 마루 위의 제비는 자유롭게 오가고 물속의 갈매기는 끼리끼리 친하다. 늙은 마누라는 종이 위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놈은 낚싯바늘을 만들고 있다. 병 많은 몸, 약물이나 있었으면 할 뿐 이밖에 또 무엇을 바라리. (靑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堂上燕 相親相近水中鷗 老妻畵紙爲碁局 推子敲針作釣鉤 多病所須唯藥物 微軀此外更何求)”

두보의 시 ‘강마을’이다. 먼저 맑은 강이 굽이치며 마을을 감고 도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여름날이다. 모든 것이 느긋하고 한가해진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어떠한 간섭이나 규제도 없어 보인다. 제비는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갈매기는 먹이를 두고 다투지 않는다. 마누라는 아이들을 위해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녀석은 낚싯바늘을 만든다.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다. 인간사의 긴장이나 갈등 같은 걸 느낄 수 없다. 그 자체로 지상낙원이다. 노자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것이 바로 내가 주장해온 무위자연”이라고 찬탄하지 않았을까.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연스레 저마다의 삶을 사는 평화로운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 아닌가.

이백은 낙원을 설명할 때 복숭아꽃 흘러가는 ‘무릉도원’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두보는 일체의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주변의 몇 가지 사물을 드러냄으로써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행복하다는 말 한마디 없어도 저절로 행복감이 전해온다. 고원한 이상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쉬운 언어여서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대가는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사람인가 보다.

어떤 종교에서는 천국을 황금과 미녀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표현했다. 무지한 중생을 설득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달나라에 가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는 최첨단 물질문명 속에서도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물질만으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두보는 이 시를 통해 낙원은 ‘마음의 상태’란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뜬금없이 본인의 건강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인에게 약물을 부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낙원에 살면서 소망을 말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지금의 삶이 꿈속이 아니라 자기가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일까. 익살스럽기도 하고 가식도 없다. 시성(詩聖)의 인간적인 매력과 천재성이 느껴진다.

김상규 < 조달청장 skkim61@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