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음악의 힘, 국악의 힘
음악은 힘이 세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죽어라 노력한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10년지기나 가족이 건네는 위로와 격려보다 우연히 거리 상점이나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와 팝송이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기쁠 때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우리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극대화하거나 뛰어넘게 하는 힘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할 여력이 없을 때 평소 좋아하는 음반을 골라 듣거나 공연장을 찾곤 한다. 신나는 판소리에 어깨춤을 들썩이고, 구슬픈 연주곡에 눈물을 훔치고 나면 마음이 한결 정화된다. 때로는 한 구절, 한 곡조만 들어도 단박에 그날의 기분과 감정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곡마다 나만의 추억과 울고 웃던 에피소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들었던 음악이라면 더 애틋하고 생생할 수밖에….

2010년 전북은행장에 취임했을 때 내가 처음 한 일은 사라져가는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실태조사와 측면 지원이었다. 스승은커녕 전승자조차 찾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 고유 문화의 명맥을 이으려면 최소한의 생태계는 지키자는 심산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이듬해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 확고했지만, 나는 고사했다. 2007년 첫해부터 문화·예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축제 조직위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전문 경영인인 나로선 부담이 컸다. 서너 차례 거절했지만 축제 전반적으로 경영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설득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직위원장직을 맡았다.

나는 ‘국악 대중화’를 목표로 축제 외연을 넓히고 조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축제의 세부 프로그램 구성은 각 분야 베테랑에게 일임했다. 조직 운영에 내 경영 마인드와 기법을 접목하면서도 문화·예술 전문가의 권한과 책임을 높여 축제 활성화를 꾀했다. 이런 우리의 진심과 노력이 통해서였을까.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영국의 유명한 월드뮤직 전문지 송라인스(Songlines)에 의해 4년 연속 ‘국제페스티벌 베스트 25’에 선정됐다. 지역의 작은 축제가 세계 유수의 음악축제와 어깨를 견주게 된 셈이다.

소리축제가 성장하면서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는 성숙해졌고, 월드뮤직 시장 관계자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국악이 신구(新舊) 세대가 손잡고,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악과 교류하면서 ‘월드 스탠더드(world standard)’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성과를 두고 밖에서 잘한다고 칭찬할 때면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이를 어쩔꼬. 2011년 어영부영 소리축제를 맡게 된 나는 역대 최장수 조직위원장이 되고 말았다.

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