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최창환 장수돌침대 회장./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최창환 장수돌침대 회장./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라는 말은 1990년대 가장 유행하던 광고 카피 중 하나다. 20여년째 인기 침대인 돌침대 역시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 화강석으로 한국 고유의 온돌 문화인 구들장을 재현한 '진짜' 과학이었다.

30여년 전인 1980년대말. 뿌연 먼지로 가득한 건설현장에서 날마다 굴삭기와 지게차를 다루며 생계를 꾸리던 한 30대 청년이 갑자기 공구 상가들이 늘어선 서울시 청계천으로 달려가 니켈크롬선과 동판을 구입했다.

그는 곧바로 열을 낼 수 있는 니켈크롬선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동판과 화강석을 차례로 덮어 겉만 뜨거운 전도열이 아닌 몸 속까지 달궈주는 복사열로 아내의 몸을 따뜻하게 해줬다. 아내는 당시 극심한 산후 후유증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세계 최초로 돌침대가 탄생한 순간이다.

침대 위에 온돌을 올린 최창환 장수돌침대 회장(60·사진)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첨은 듣기 싫다"…늘 '반대하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오너

1990년대 말 "별이 다섯 개"를 외치며 홈쇼핑 업계 깜짝 스타로 등장한 최 회장은 직원들의 '반대' 목소리에 더 집중하는 오너다. "회장님,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님, 공장 입지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등의 말이 그를 더 춤추게 한다. 사업적으로 중요한 갈림길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이다.

"중국에 처음 진출할 때였어요. 공장 부지를 세우는 문제를 놓고 직원들과 의견이 분분했어요. 현지 전문가들은 동북삼성 지역의 기온이 낮기 때문에 돌침대를 팔기에 최적지라고 얘기했지만 그곳은 돈이 몰리는 곳이 아니었어요. 결국 상하이를 택했죠. 덥든 춥든 돈이 있어야 500만 원이 넘는 이 돌침대를 살 수 있는 거죠. 상하이는 중국에서 돈이 가장 활발히 도는 곳이에요. 저를 비롯해 전문가들의 의견에 반대한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어요."

20년 이상 국내 돌침대 업계 1위를 고수, 중국에만 300여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수돌침대.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도 1997년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고객들의 주머니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던 시기라 상대적으로 고가인 돌침대가 팔릴리 만무했다. 주변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그나마 남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버텼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다시 한번 '반대' 카드를 집어 들었다.

"회사 임원들 사이에서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우리 회사도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그럼 구조조정을 어떤 기준으로 하지?'가 문제였고 저는 당연히 월급이 높은 순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 얘기를 듣고 난 뒤 임원들 사이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임질 건 책임져야죠. 사업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지만 구조조정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직원들도 다 가족인데요."

◆ 한 마디로 '흉물' 취급받던 돌침대…TV홈쇼핑으로 '빵' 뜨다

이제는 명품 가방과 함께 결혼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 예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사업 초기 '흉물' 취급받던 게 엊그제라고 최 회장은 회상했다. 그만큼 돌침대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돌침대를 만들고 나니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 딱딱한 곳에서 누가 자겠느냐' '그 무거운 걸 어떻게 옮기느냐' '한번 산 사람은 안 살텐데 시장이 형성되겠느냐' 등 돌침대에 관해 안 들어본 얘기가 없습니다. 전시장이나 백화점에 내놔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휴식차 앉아보고 가는 용도 외엔 한달에 한 개도 못 팔았습니다. 팩스비 하나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죠."

1996년 이제 막 지역 케이블 TV가 생기던 차 최 회장은 홈쇼핑을 통한 유통 채널의 성장 가능성을 감지했다. 그러나 당시 홈쇼핑을 먹여 살리는 제품들은 유아용 장난감이나 시계 등 크기가 작은 '소형' 제품들이었다. 돌침대는 크기가 크고 무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판매서부터 배송까지 해결해야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CJ오쇼핑의 전신인 39쇼핑 사장을 찾아갔어요. 딱 30분만 편성해달라고요. 처음 20분간 주문이 한건도 안들어오더니 쇼호스트가 멘트를 멈추자마자 콜 수가 밀려들기 시작했어요. 시청자들도 처음 보는 물건이니 설명을 쭉 듣고 있었던 거예요. 이렇게 잘 될줄 몰랐기 때문에 물량 확보를 못해서 제품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가 사고를 한번 쳤죠. '딱 한 달만 기다려주신다면 다시 고객님들을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방송에서 예정에 없던 멘트를 했습니다."

약속대로 한달 뒤 장수돌침대는 시간당 7억 원이라는 홈쇼핑 사상 역대 최고매출액을 기록하며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구업체로는 드물게 본사에서 직접 배송을 합니다. 사업 초기에는 제가 직접 배송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때 배달해드렸던 분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해요. 초창기 고객분들 중에선 본인이 써 보고 자녀, 형제, 지인 등에게 권해 10개를 넘게 구입하신 분도 계세요."
최창환 장수돌침대 회장./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최창환 장수돌침대 회장./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 이제는 '짝퉁'과 전쟁…"명품이니까 가짜도 판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체 기능성 침대 시장의 25%를 점유하고 있는 장수돌침대는 인지도와는 달리 기업 규모가 크지 않다. 직원 수는 80여 명에, 지난해 매출액은 560억 원 가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소송 건수와 규모로 따지면 여느 대기업 못지 않다. 업계 특성상 복제품이 난립하기 때문이다.

"TV광고 초기 제가 직접 방송에 나가 "별이 다섯 개"를 외친 것도 장수돌침대의 기술력을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어요. 당시 그 광고를 본 어린 아이들이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가 어렵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장수돌침대의 핵심 기술은 복사열을 통한 온열찜질 방식으로 이와 관련된 특허, 실용신안, 상표 등 지식재산권만 250여 개에 이른다. 전기를 꽂아 사용하는 전기침대 방식도 국내 최초 도입했다. 또 천연석만을 가열해 전도열을 일으키는 기술도 장수돌침대의 작품이다.

"아무리 복제품을 만들어도 그 효과까지 따라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억울하죠. 돌침대의 주요 타깃층이 구매력이 강한 50대 이상이에요. 다른 기업들이 자체 개발한 기술이라면 모르겠지만 장수돌침대의 기술을 베껴서 판매한 제품을 사신다면 그 효과에 대해서 반신반의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최 회장은 그래서 자체 개발한 일부 기술에 대해선 특허를 신청하지 않고 다른 기업도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장수에서 나온 돌침대인줄 착각하고 구매한 고객들에게도 돌침대의 효능만큼은 실망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은 장수돌침대가 2001년부터 상표에 별 모양 다섯개를 추가했지만 1990년대 초부터 장수돌침대 상표를 사용한데다 시장 점유율 등을 고려할 때 상표가 널리 알려져 있다고 봐야 한다며 제품의 '주지력'을 인정했다.

"일개 중소기업이 어느 한 분야에서 대표성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죠. 상표권 분쟁은 많이 일어나고 지금도 어디선가 가짜 돌침대가 팔리고 있을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요. 게다가 복사열을 이용한 핵심 기술을 제외하곤 다른 기업과 기술 공유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명품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유사품도 계속 생기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 프랜차이즈로 제2의 '도약' 준비…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 3000개 목표

장수돌침대는 올해 예상매출액을 700억 원으로 올려잡았다. 이미 100만 여 가구 정도가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국내 시장보단 중국 동남아 등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전략이다.

최 회장은 현재 300여개 수준인 중국 대리점 수를 2015년까지 3000개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사업 모델이 없는 장수돌침대로서는 대리점을 확보해 한 개라도 더 파는 것이 당면한 과제기 때문이다.

해외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2011년 중국 매출액은 38억 원, 지난해에는 42억 원을 기록했다. 미국에는 현재 15개의 대리점을 냈고 향후 동남아와 유럽 시장을 두고 저울질 중이다.

올 3월부터는 기존 대리점들을 모두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변경해 국내 사업도 한 단계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제품만을 만들어 팔던 기존 대리점의 한계를 극복하고 온돌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문화 체험 마케팅을 접목한 프랜차이즈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올 초 장수 FC 프랜차이즈 사업본부를 출범시키고 기존 대리점들을 새로운 시스템 안으로 끌어왔다.

"이케아 등 해외 유명 가구업체들의 공장을 가보면 그곳에선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팔아요. 내년에 이케아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국내 가구 시장에 충격을 줄 건 명약관화해요. 그런데 거기서 또 배우는 겁니다. 한국 실정에 이케아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사람들이 왜 이케아를 사는지 장수도 보고 배우는 거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져 큰일"이라는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끊임 없는 공부와 배움을 강조했다.

"한국 온돌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중국어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3년간 해외로 뛰어다녔어요. 당장 오늘 일을 못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나 오늘 하루 배운게 아무 것도 없으면 안되는 거죠."

농고 출신에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아시아태평양가구협회장, 세계가구연합회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공부하면 안될 게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 최 회장은 이날도 직원들에게 '너는 오늘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글=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사진=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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