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란 영어단어는 너무 낯설지 않을까요. " '한국경제와 포퓰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집 수정판을 낼 때 들었던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 포퓰리즘은 일상용어가 된 듯하다.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공격할 때면 어김없이 포퓰리즘을 들먹인다. 칼럼과 기사에서도 인기영합주의라는 단어가 쉴틈없이 등장한다.

어느덧 유행어가 된 인기영합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다수 국민들의 환심을 사는 정책으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많은 경우 중장기적으로 나라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한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정부에서 보았듯이 달콤한 선심성 정책이 초래한 경제난의 뒷감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포퓰리즘이 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 중에는 좋은 포퓰리즘도 있다.

정치인들을 향한 국민들의 실망과 좌절감을 승화시킨 정책은 인기가 있을 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 약이 된다. 정치인들이 누리는 특혜를 줄여서 혈세의 낭비를 막을 수 있게 한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구조를 고쳐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보다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나쁜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하는 것 못지않게 좋은 포퓰리즘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절실하다.

예산안 처리기간을 7년째 지키지 못하고도 끝날 줄 모르는 정쟁이 보여주듯 국회의원들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국민들과 고통분담을 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이려는 시도는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났다. 자유선진당이 정원 축소를 제안했지만 국회에선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세비를 줄이겠다는 시도도 흐지부지됐다. 민주당이 제안한 세비 10% 삭감안은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뒤 잊혀지고 말았다.

철저한 심사와 토의를 하기에는 예산 심의 기간이 짧다고 불평하는 국회의원들.하지만 자신들의 경비에 대해선 관대하기만 하다. 2005년 국회의원 수당 등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신설한 경비항목(정책 개발비 및 지원금) 중 상당수는 의원들의 쌈짓돈으로 전락했다. 지원금이 목적에 맞게 집행됐는지에 대한 감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종 위원회 숫자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정부는 참여정부가 만들어 놓은 573개 위원회 중 273개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폐지하겠다고 밝힌 273개 위원회 중 102개는 여전히 엄청난 예산을 쓰며 활동 중이다. 여기에다 새로 만들어진 위원회가 50여개나 된다. 이로 인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9월 현재 위원회 숫자는 461개에 이른다.

국정홍보처를 폐지해 박수를 받았지만 얼마 안 돼 홍보 조직과 인력을 대폭 늘려 홍보기획관실을 만들었다. 경제 담당 조직은 규모를 줄였지만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등 비경제조직의 몸집은 크게 늘어났다. 특임장관 등이 사용하는 예산을 대폭 늘렸다. 국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리더십을 앞장서서 보이려는 기색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좋은 포퓰리즘 정책을 현실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치인들에게 제 살을 깎는 고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포퓰리즘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을 위하는 길로서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준다. 정치인들을 멸시가 아닌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그토록 외치는 공멸이 아닌 공생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나쁜 포퓰리즘이 아닌 좋은 포퓰리즘을 추구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면 국민들은 높은 지지도로 보답할 것이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경영학>